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위중한 환자에 힘 되는 건 의사? 아니 가족!

중앙일보 2020.06.29 10: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49)

나는 아주 가벼운 진정제를 골랐다. 실린지 펌프의 투명한 액체가 환자의 목덜미를 통해 심장으로 쏟아져 들었다. 가쁘게 몰아쉬던 숨소리가 먼저 잦아들었고 곧이어 눈이 감겼다. 그는 빠르게 꿈속에 빠졌다. 현실 또한 차라리 꿈이길 바라면서.
 
환자의 의식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었고, 목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환자 곁을 빼곡하게 둘러싼 덩치 큰 기계들. 나는 그것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조그만 틈새를 만들었다. 사람 한 둘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그리곤 문 밖에서 기도 중이던 보호자를 불러들였다. 중년의 여자가 양손에 각각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채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의 손에 기댄 채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걸음에는 일절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환자의 의식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었고, 목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사진 pxhere]

환자의 의식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었고, 목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사진 pxhere]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운은 한 가족을 순식간에 수렁에 빠트렸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누구도 괘념치 않았던 죽음이란 낯선 그림자가 짙은 냄새를 피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불과 수 시간 만에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길 때 그녀는 남편의 상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들은 터였다. 그러니 자기를 다시 불러들인 사실을 두려워했다. 아직도 전해 줄 비극적인 소식이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녀는 내게 말없이 물었다. 눈동자엔 두려움· 공포·불안 같은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상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옆에서 한마디씩 해주면 어떨까요? 환자분이 힘을 낼 수 있도록요. 무슨 말이라도 좋습니다.”
 
나는 환자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건너편을 가리켰다. 환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곳에 있는 3쌍의 눈동자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위중한 환자를 치료할 때면 곧잘 그 가족을 불러들인다. 환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그에게 생면부지 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일면식조차 없던 사이니까. 오늘 그에게 액운이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을 이름조차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실력도 인성도 알 수 없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목숨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연히 배정받은 의사에게 목숨을 맡기고 있다는 얘기다. 믿음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남은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그에게 삶의 의지를 주문해 달라고.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생의 의미를 새겨달라고. 그럴 때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뻔한, 흔해빠진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힘내세요”, “잘하고 있어요”와 같은. 하지만 그런 진부한 대사도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는 천지 차이다. 짧은 말 한마디에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베테랑 연기자도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이 서려 있다. 사랑한다는 평범한 말에서 구석구석 절절함이 배어난다.
 
가족들을 부른 건 어쩌면 환자보다 내 등을 떠밀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광경을 보고도 나태할 의사 따윈 세상에 없을 테니까. 이제는 나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진 pixabay]

가족들을 부른 건 어쩌면 환자보다 내 등을 떠밀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광경을 보고도 나태할 의사 따윈 세상에 없을 테니까. 이제는 나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진 pixabay]

 
환자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그와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쥐었다. 굳이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너희도 아빠한테 힘내라고 한마디씩 하렴.” 엄마의 요구에 애들은 차례로 “아빠 힘내”란 말을 반복했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광경에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윽고 그녀는 아이들 손을 붙잡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건 환자와 의사 그리고 한세상이 잠시 다녀간 기억뿐. 그렇다. 가족들을 부른 건 어쩌면 환자보다 내 등을 떠밀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광경을 보고도 나태할 의사 따윈 세상에 없을 테니까. 이제는 나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