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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동서 사라진 '비행기' 건배사…이스타항공 1680명은 지금

중앙일보 2020.06.29 05:00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멈춰서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멈춰서 있다. 뉴스1

이스타항공 M&A…묵묵부답 제주항공

"떴다 떴다 비! 행! 기!"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이스타항공 본사 인근 주점에서 흔히 듣던 구호였다. ‘떴다 떴다’를 선창하면 다같이 ‘비행기’를 외쳤다. 이스타항공 임직원 공식 건배사 ‘비행기’는 "〈비〉전을 가지고 〈행〉동하면 〈기〉적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방화동에서 이 건배사를 제창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스타항공이 사실상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상황으로 전락하면서다. 이스타항공 임직원도 벌써 5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케팅 하는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원들. 연합뉴스

피케팅 하는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원들. 연합뉴스

항공업계 제주“계약금 반환소송 준비” 추정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합병(M&A)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건 일방의 책임이 아니다. 인수기업인 제주항공의 모기업 애경그룹과, 피인수기업의 대주주 이스타홀딩스를 소유한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가 모두 책임이 있다.
 

조업비·유류비 등을 장기 연체 중인 협력사는 다음달부터 이스타항공에게 대금 지급을 요구할 전망이다. 자본잠식 상황인 이스타항공은 이렇게 되면 파산한다. 1680여명의 이스타항공 임직원도 모두 일자리를 잃는다. 
제주항공의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카운터. 연합뉴스

제주항공의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카운터. 연합뉴스

여론에 떠밀린 이스타항공 대주주는 일단 체불 임금(200억원·5월말 기준)의 절반 수준(110억원)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제주항공이 요구했던 ‘체불임금 해결’에 대한 공식 입장이다.
 
이제 공은 다시 제주항공·애경그룹에게 돌아왔다. 이스타항공 대주주의 발표에 대해 최소한 입장이라도 내놓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 대리기사, 택배상하차로 버티면서 제주항공 입만 바라보는 1680여명에 대해 더 이상 지금처럼 ‘입장 없음’으로 일관하면 안된다.
이스타항공 익명게시판에 ID '좋은 소식'님이 올린 사진. 그는 "이럴때가 있었다"고 회상하며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 익명게시판에 ID '좋은 소식'님이 올린 사진. 그는 "이럴때가 있었다"고 회상하며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 이스타항공

항공업계에선 "제주항공이 M&A 계약금(115억원) 반환 소송을 준비한다"는 루머가 흘러나온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지난 5월 이후 “이스타항공을 인수할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언급할 수 없다”며 함구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본사 회의실로 출근하면서 실사를 진행했던 M&A관련 제주항공 임직원은 5월을 전후로 일제히 다른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업무상 문의를 해도 전화를 안 받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스타항공 관계자의 설명이다.
 

파산 방조하면 대규모 실업자 양산

이스타항공 직원이 익명게시판에 ID '돈좀줘'님이 게시한 사진. 그는 "비행기가 다시 뜨면 힘차게 캐리어를 끌고 싶다"고 회상했다. 사진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 직원이 익명게시판에 ID '돈좀줘'님이 게시한 사진. 그는 "비행기가 다시 뜨면 힘차게 캐리어를 끌고 싶다"고 회상했다. 사진 이스타항공

같은 항공업계 구성원 입장에서 제주항공은 M&A 진행 상황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만약 이스타항공 실사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면, 이를 공표하고 계약금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스타항공은 정부 지원 요건을 충족해 생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해외 기업결합심사 승인 일정을 거론하며 계속 M&A를 미뤄도 곤란하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업결합심사는 M&A의 실질적 걸림돌로 보기 어렵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처럼, 애경그룹도 책임있는 인사가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제주항공이 계약금 반환 소송을 염두에 두고 벼랑 끝 작전을 구사하다 이스타항공이 진짜 파산한다면, 제주항공도 결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주항공이 일찍 인수 포기 의사를 밝혔다면 정부 지원을 통한 기업 회생도 전혀 불가능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공을 넘겨받은 제주항공이 응답할 차례다. 기업 파산으로 일자리를 잃는 항공업계 직원이 속출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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