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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치매 고령환자에게 생명보험을 판매할 때 생긴 일

중앙일보 2020.06.28 13:00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54)

인지능력이 떨어진 고령 고객이 정상적으로 상품을 구입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백화점이 귀금속, 미술품, 고급의류 등 고가상품을 같은 고객에게 판매해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도쿄에 있는 한 백화점은 치매에 걸린 여성에게 4년에 걸쳐 약 1100만 엔의 여성의류를 판매하였다. 치매 고객의 동생은 방안에 개봉되지 않고 수북이 쌓여 있는 수많은 옷을 보고, 백화점에 더 이상 상품을 팔지 말도록 부탁했다. 그러나 백화점을 계속 판매했고, 결국 그 동생은 소송을 제기했다.
 
도쿄지방법원은 백화점에 대해 총 구입대금 중 240만 엔을 환불할 것을 명령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백화점은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만 판매를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화점은 고령 고객이 단지 기호상품을 선택해 구매했다는 주장이지만, 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의 상황을 파악하고 불필요한 상품을 팔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 조치가 없었다.
 
치매에 걸린 고객에게 4년에 걸쳐 약 1100만 엔의 여성의류를 판매한 도쿄의 한 백화점에 법원은 240만 엔을 환불할 것을 명령했다. 이처럼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에 대한 판매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 pexels]

치매에 걸린 고객에게 4년에 걸쳐 약 1100만 엔의 여성의류를 판매한 도쿄의 한 백화점에 법원은 240만 엔을 환불할 것을 명령했다. 이처럼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에 대한 판매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 pexels]

 
금융회사도 고령 고객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이 여러 개의 생명보험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많다. 한 80세 남성은 치매로 간병시설에 입주해 있지만 4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보험을 계약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60대 아들은 매월 보험료 5만 엔이 부담돼 해약하고 싶다고 국민생활센터에 상담을 요청하였다. 간병시설에 근무하는 간병 매니저의 제보도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독신 남성이 최근 10년간 5개의 생명보험을 계약했고, 최근에 6번째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령자의 금융상품 계약과 관련한 상담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위험이 높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와 은행도 고령 고객과 분쟁에 휩싸여 있다. 한 증권회사 직원은 간병시설에 입주한 치매환자(80대 남성)의 주식과 현금을 무단으로 운용해 1억 엔 이상의 손해를 주었다며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어느 신탁은행 직원은 70대 여성에게 위험이 높은 펀드(약 2100만 엔)를 판매했다. 여성은 청각 장애로 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은행이라면 안심할 수 있다며 그 펀드를 구입했다. 2년 후에 그 펀드가치는 50% 정도 떨어졌다. 지방법원은 은행이 고객의 상황과 의향에 반해 높은 위험이 따르는 금융거래를 권유했다고 인정했다.
 
일본 금융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에 걸리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본인에게 적합한 생명보험을 선택할 수 없고, 자산운용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고령 고객에게 다음과 같은 자산관리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① 금융거래를 단순하게 하고 적절한 한도액을 설정하여 과도한 사용을 방지한다.
② 금융자산의 운용과 인출, 자산의 사용목적 등 관리방침을 정해둔다.
③ 재산목록과 통장관리 등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의후견인 등)과 공유한다.
 
또한 금융분쟁을 철저히 방지하고자 금융회사의 종합감독지침을 개정해 고령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할 때 유의사항을 제시하였다. 고령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적합성 원칙에 따라 신중한 권유, 판매 프로세스 확보, 모니터링 구조를 마련하도록 했다. 금융상품 판매 후에도 점검하도록 했다.
 
일본증권협회는 75세 이상 고객에게 주식과 펀드를 판매할 때는 관리자에게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80세 이상 고객은 영업 당일에는 주문을 받지 않고, 영업담당과 다른 관리자가 주문을 받는다. [사진 Pixabay]

일본증권협회는 75세 이상 고객에게 주식과 펀드를 판매할 때는 관리자에게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80세 이상 고객은 영업 당일에는 주문을 받지 않고, 영업담당과 다른 관리자가 주문을 받는다. [사진 Pixabay]

 
일본증권협회는 금융청의 지침에 따라 업계의 자율규제 차원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가이드라인은 고령 고객의 기준을 75세 이상, 85세 이상으로 구분하고 각 연령 기준에 따라 구체적인 판매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즉 75세 이상의 고객에게 주식과 펀드를 판매할 때 관리자에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고, 관리자는 면담과 전화로 권유하거나 적합성을 판단한다. 80세 이상의 고객은 영업 당일에는 주문을 받지 않고, 영업담당과 다른 관리자가 주문을 받는다. 고령 고객과 면담내용은 반드시 녹음으로 기록해야 한다.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의 금융 행동으로 인한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보통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은 ATM을 사용할 수 없고, 통장을 분실했다거나 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로 금융회사와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느 치매환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은행 계좌에서 많은 돈을 찾았다. 한 90대 여성은 손자에게 상속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여러 금융회사에서 2000만 엔을 찾아 손자에게 건네주었다.
 
치매를 이유로 그 가족과 간병인은 계약의 취소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치매환자가 있는 가족의 약 30%는 쓸데없는 상품구입으로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앞으로 치매환자가 늘어나면 이러한 사례는 더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회사는 치매에 걸린 고령 고객과 분쟁을 피하거나 치매환자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의 판단능력이 떨어져 자산 관리가 어렵게 되거나,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은행은 예금동결 절차를 추진한다. 은행에서는 원칙적으로 본인의 의사표시만으로 예금인출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치매에 걸려 자산관리가 곤란해도 가족과 친족이라고 해서 간단히 부모의 계좌에서 돈을 찾아 쓸 수 없다.
 
규정상 창구에서 통장과 인감으로 인출과 계좌해약은 물론 ATM에서 현금카드와 비밀번호로 찾을 수도 없다. 본인에 의한 위임장을 준비할 수 없다면 절차에 3개월 정도 걸리는 성년후견인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성년후견제도는 치매로 인해 판단능력이 떨어져 스스로 의사결정이 힘들 경우 피후견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다.
 
치매로 자산을 활용하기 어려운 고령자의 금융자산이 동결되면 간병하는 가족이나 친척이 간병비용과 치료비를 낼 수 없다. 또한 사회전체에 소비가 위축되어 경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치매환자의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병하는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부담은 큰 문제가 되었다. 제3자의 부정인출을 방지할 목적이지만 실제로 간병하면서 자금을 관리하는 가족에게 불편한 상황이었다. 치매 고령자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조치지만 금융자산을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없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고자 2020년 3월 전국은행협회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규정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치매로 인해 판단능력이 떨어진 고령자의 예금인출 방식을 전국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고령화에 따른 치매환자가 증가하면서 가족이 치매환자의 예금을 관리하기 쉽게 했다. 앞으로 은행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예금을 인출하지만, 판단능력이 떨어진 본인 대신에 가족이 인출할 때는 일정한 조건에서 가족관계를 확인한다. 호적초본으로 가족관계를 증명하고, 본인이 이용하는 간병시설과 의료기관의 청구서로 용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업계 통일 규정을 마련했다.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나면서 노후생활자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후자산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려면 현역시절의 자산형성도 중요하지만, 고령기에 자산관리에 영향을 주는 인지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치매로 인한 금융상품을 거래할 때 발생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고령 고객이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2018년 금융심의회 시장 워킹그룹은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고령 고객에게 어떻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할지를 핵심과제로 삼았다. 금융회사는 초고령사회에 적합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신탁상품과 안부서비스 등이 판매되고 있지만, 고령 고객의 다양한 상황과 니즈에 적합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금융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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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종 이형종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필진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 한국은 급속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인생 80세 시대와 다른 삶의 방식이 전개된다. 기존의 국가 시스템과 사회 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인생100세 시대에 걸맞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초고령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대응책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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