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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불황 거미줄’에 숨막혀…공장 경매 물건 쏟아진다

중앙선데이 2020.06.27 00:20 692호 13면 지면보기

코로나19 예고된 그늘

제조업 경기가 위축하면서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제조업 경기가 위축하면서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1 2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선 대구염색공단 내 태승섬유 공장이 감정가격 59억원에 경매에 부쳐졌다. 폴리에스터 감량가공 전문 중견기업으로 제법 탄탄했던 이 업체는 지난해 초 경영난으로 부도를 맞았고, 공장은 경매에 넘어갔다. 그러나 이날 서부지원에서 진행된 태승섬유 공장 경매엔 응찰자가 한 명도 없었다. 법원은 7월 최저입찰가격을 41억원으로 내려 다시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수출 막히고 부채에 허리 휘청
전국 곳곳 폐업 공장·용지 급증

4~5월 연속 경매 400건 넘지만
낙찰률은 10년 만에 30% 아래

공장 가동률 줄자 전기 남아돌아
침체 이제 시작, 하반기 더 걱정

#2 지난달 14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경매에 부쳐진 마산회원구 봉암동의 한 공장이 34억원에 낙찰됐다. 1차례 유찰 끝에 이날 새로운 주인을 맞았지만, 낙찰가격은 감정가격보다 16억원이나 저렴했다. 그나마 새로운 주인을 만난 게 다행이라는 게 경매시장의 평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의 공장 수요가 끊기다시피한 데다 법원경매에 나오는 공장 물건이 확 늘었기 때문이다.
  
#법원경매 시장에 중소 제조 업체의 공장이나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용지 물건이 크게 늘고 있다. 자금난에 부도를 맞거나,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중소기업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세계 경기 침체와 급등한 최저임금, 코로나19 사태 등의 영향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법원경매 일정상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면서 타격을 받은 중소기업의 경매 물건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경매 정보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국의 공장이나 공장용지 경매 물건은 올 들어 크게 늘었다. 4월과 5월에는 각각 464건, 436건으로 두 달 연속 400건을 넘기도 했다. 경매진행은 2019년(427건)에 비해 8.6%가량 증가한 반면, 낙찰건수는 7.2% 감소했다. 특히  
 
4월 낙찰률은 27.4%로, 4월 공장·공장용지 낙찰률이 30% 이하로 떨어진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오명원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공장 등 생산 현장을 둔 기업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부도를 맞거나, 부도까진 아니라도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있지만 공장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경매 물건은 경기·인천은 물론 부산·대구·울산·창원·구미 등 전국의 주요 산업도시에서 고루 분포해 있다.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도 신속하게 팔려는 급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에 올 들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한 영향이다. 경기도 안산시 반월시화공단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인건비나 설비비는 계속 오르는데 판로가 줄면서 이미 경매에 넘어간 공장도 수십여 곳이나 된다”며 “여기에 코로나19로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곳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공단이 위치한 안산시 단원구와 시흥시 정왕동의 공장 경매 건수는 2018년 61건에서 지난해 119건으로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제조업 평균가동률(68.6%)은 2009년 2월(66.8%) 이후 가장 낮다. 전국의 공장이 세계 금융위기 때만큼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남아도는 전력량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 공급예비율은 올 들어 계속 상승세다. 지난 달엔 34%로 올 들어 가장 높았다. 전력 공급예비율은 전국의 발전소에서 당장 공급할 수 있는 발전량 가운데 생산하지 않은 전력량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34%였다는 건 5월 중 전기 소비가 가장 많았던 날에도 34%가량 전기가 남았다는 뜻이다. 국내 전기 사용량의 절반가량이 산업용으로, 기업의 전기 사용 감소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년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감소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최종 에너지 수요는 전년 대비 0.9% 감소한 2억3060만TOE(석유환산톤)로 집계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경기 둔화로 공장이 멈춘 영향”이라며 “부도를 맞거나 억지로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멈추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기업이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장의 경매행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중소기업 60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분기에도 경영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한 기업이 전체의 65.7%에 이른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5월에도 수출은 좋지 않기 때문에 광공업 생산은 나쁠 것”이라며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위축과 미·중 갈등으로 한국의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공장이 경매로 넘어가면 업체엔 이중고가 될 수밖에 있다. 일반 매매를 통해 공장을 매각하면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계·설비 가격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지만, 경매로 넘어가면 기계·설비 가격은커녕 공장 정상 시세의 80~90% 수준인 감정가격보다도 낮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수출 감소와 경기 악화가 심화하면서 금융비용과 인건비 부담을 겪는 공장이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공장 등 공업용 부동산 매물이 더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 10개 중 5개는 20·30대 몫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고용 충격이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완화하고 있지만 제조업에서는 되레 영향이 커지는 모습이다. 국내에선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하면서 일부 서비스생산과 소매판매도 살아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유럽 등지의 경제 봉쇄가 이어지면서 제조업이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달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5만7000명 감소했다. 3개월째 취업자 수 감소폭이 확대했다. 서비스업 중 숙박·음식업과 교육서비스업 등은 취업자 수 감소폭이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제조업 불황 여파는 특히 한국 경제의 허리인 30·40대 일자리를 빼앗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 10개 중 5개는 이들 연령층 일자리였다. 연령대별로는 30대에서 가장 많은 2만9000명이 줄었다. 20대(-2만3000명)를 포함하면 5만7000명으로 사라진 일자리 10만1000개의 절반이 이 연령대에서 발생했다.
 
40대(-1만9000명)도 취업자 감소폭이 컸다. 60대 제조업 취업자가 늘어난 건 단순 노무직이 증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30대 제조업 취업자 감소는 40대에 집중됐던 실업이 젊은층으로 확산한 것으로 정부는 해석한다. 3~5월 제조업 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감소했는데 3월과 4월엔 40대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각각 3만6000명, 5만1000명 줄어 30대보다 감소폭이 컸다. 통계청은 “제조업은 30, 40대 종사자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취업자 수 감소 영향도 더 크게 나타났을 것”이라며 “특히 인구구조상 30, 40대 전체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 취업자 수 감소폭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업이 계속고용 부담이 덜한 임시직을 주로 만들면서 30·40대 취업자가 줄고 60대 이상 취업자는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제조업의 고용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지난 달 제조업 일시휴직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만1000명 늘어난 11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무급 휴직기간이 6개월 이내인 일시휴직자는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경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실업자 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4월에도 제조업 일시휴직자는 전년 동월 대비 8만2000명 늘어난 12만6000명이었다.
 
결국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유럽이 살아나야 가동을 멈춘 공장도 다시 돌아가고, 취업자 수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계청은 “2~3월까지는 국내 코로나19 확산세로 서비스생산과 소매판매 감소가 주로 이어졌지만 해외 코로나19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며 “하지만 4월부터 미국, 유럽 등 주요 수출국의 경제 봉쇄 영향이 국내 제조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수출 등은 미국 등 외국의 코로나19 확산 정도나 봉쇄 정책 해제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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