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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창고가 비지 않도록…북한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중앙선데이 2020.06.27 00:20 692호 19면 지면보기

4·19문화상 수상,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실이 있는 덕수궁 중명전 앞에 선 김종규 이사장. 김현동 기자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실이 있는 덕수궁 중명전 앞에 선 김종규 이사장. 김현동 기자

불의와 부정에 온 국민이 분연히 항거했던 4·19혁명이 일어난 지 올해로 60주년. ‘자유·민주·정의·통일’이라는 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창립된 사단법인 4월회(회장 김용균)는 2000년부터 ‘4·19문화상’을 제정해 시상해왔다. 올해 제21회 4·19문화상 수상자는 김종규(81)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인쇄전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하고,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한국박물관협회 회장·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다.
 

문화 예술계 촘촘한 인맥 ‘마당발’
필요한 사람끼리 연결하는 ‘다리’역
‘새 책 팔고 헌책 사’ 출판박물관
“문화유산 지키는 데 많은 동참을”

김 이사장은 “당시 동국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으로, 선배들과 함께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까지 행진했던 기억이 새롭다”며 “가장 공정해야 할 선거가 타락한 것에 대해 ‘이건 아니다’ ‘룰은 지켜야 한다’는 민심이 터져 나왔다. 그 민심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궈내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친형 김봉규 회장이 창립한 삼성출판사에 입사해 1964년부터 10년간 부산지사장을 지내며 『사하촌』을 쓴 소설가 요산 김정한을 비롯해 향파 이주홍(아동문학가), 청남 오제봉(서예가), 석불 정기호(전각가) 등 문화예술인들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고향인 목포에서도 이미 많은 예술인과 교류하며 흥취를 길러온 그다.
 
“틈나는 대로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자료를 모았지요. 형님이 ‘새 책 팔아 헌책 산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피난 내려온 분들이 가져온 귀한 가보도 살 기회가 종종 있었고, 그런 것들이 다 모여 1990년 삼성출판박물관을 만든 토양이 됐습니다.”
 
박물관 설립에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힘이 컸다. 삼성출판사가 1972년 창간한 월간문예지 『문학사상』의 주간이기도 했던 이 장관은 88올림픽 직후 “2000년대에는 박물관·미술관 1000관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주창했는데, 김 이사장이 이를 귀담아듣고 서둘러 이행한 것이다.
 
24일 열린 제 21회 4·19문화상 시상식. 왼쪽부터 김용균 사단법인 4월회 회장, 김종규 이사장, 이재후 4·19문화상재단 이사장.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24일 열린 제 21회 4·19문화상 시상식. 왼쪽부터 김용균 사단법인 4월회 회장, 김종규 이사장, 이재후 4·19문화상재단 이사장.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출판인으로, 박물관인으로 그의 행보를 더욱 넓고 깊게 해준 것은 특유의 ‘브릿지론’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하는 ‘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힘을 합치면 제3의 힘이 나온다”는 지론이다. 그가 ‘문화계 마당발’로 불리는 이유다.
 
“제가 사람들을 대할 때 명심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칭찬에 인색하지 마라, 다른 하나는 비난하지 말고 비평하라 입니다. 특히 초년병한테는 잘한 것만 찾아 칭찬해주고, 중견이 되면 칭찬보다 보완해야 할 점을 가차 없이 얘기하는 식이죠.”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본떠 2007년 만들어진 문화유산국민신탁이다. 제 모습을 찾 은 서울 종로 이상의 집, 전남 보성의 옛 보성여관, 미국 워싱턴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은 신탁 회원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신탁 설립을 주도했던 김 이사장은 2009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아 회원 확대에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덕분에 현재 회원은 1만 5000명이 넘는다. 회원 선물용인 감식초 비누와 커피 드립은 그의 자동차 트렁크를 늘 가득 메우고 있다.
 
“조상들이 물려준 기억의 창고가 텅텅 비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원형 그대로 물려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10만 양병설’처럼, 회원을 하나라도 더 늘리고 싶습니다. 북한에도 문화유산이 많을 텐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겠지요.”
 
코로나19 사태로 시상식은 두 달 가량 늦어진 24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재숙 문화재청 청장, 소설가 김홍신 전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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