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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발전 끌어안는 한국, ‘공유지의 비극’ 배신자 될 수도

중앙선데이 2020.06.27 00:02 692호 12면 지면보기

한국판 그린뉴딜의 한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1일, 취임 1년을 맞아 정책 브리핑 겸 기자회견을 갖고 7월 중 한국판 뉴딜정책의 큰 그림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강원도 춘천 소재 산업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다시 밝혔듯 한국판 뉴딜의 양축은 디지털그린과 그린뉴딜이다. 7월 발표 내용을 봐야하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한국판 그린뉴딜 안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규모와 범위 면에서 그린뉴딜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탓이다.
 

기재부 초안, 사업 범위·예산 초라
전력계량기 교체가 사실상 전부
추경, 1개 기업 지원액 반도 안 돼

기후 위기 해결 역행하는 행위
내달 발표할 청와대 ‘큰 그림’ 주목

김상조. [뉴스1]

김상조. [뉴스1]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국판 뉴딜에 배정된 사업 내용과 예산을 밝혔다. 기재부는 발표문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기 조처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디지털·그린·휴먼뉴딜로 구성된 한국판 뉴딜을 도입한다고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정책이 그린뉴딜이다. 그린뉴딜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유통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사업 이익을 가져갈 주체를 바꿀 획기적 ‘딜’이다. 산업·에너지 분야 등이 그린뉴딜 각론에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195개 국가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채택하면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목표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후의 목표이자 보루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기재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안은 어떤가.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범위와 규모가 작아도 너무 작다. 무엇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을 변화시킬 방안이 전혀 없다. 화석연료에 기대어 수익을 근근히 내는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에너지 관련 정책이라곤 아파트에 스마트 전력계량기를 설치·교체하는 사업이 사실상 전부다. 이걸 그린뉴딜이라 부르니 민망하기 그지 없다.
 
기재부판 그린뉴딜은 큰 그림이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 방향도 명확치 않다. 한국 경제와 사회를 뒤흔들 뉴딜이라면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정책 기조를 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예산·인력 등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그린뉴딜을 발표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쇠락해가는 석탄산업을 고집스레 붙들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예컨대 정부가 석탄발전 사업 등을 벌이다 위기에 처한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하는 금액은 3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번 추경안에 포함된 그린뉴딜 예산(1조4000억원)의 2.5배 수준이다. 이쯤되면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그린뉴딜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뉴딜은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인류가 뿌리를 내리고 경제활동을 영위한 터전인 지구, 즉 공유지를 파괴하는 사업 방식은 중단해야 마땅하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소 방목장에서 발생한 공유지의 비극은 기후위기 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경계로 삼아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 이론은 미국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인 없는 호수가 마을 한복판에 있다고 가정하자. 호수에는 물고기가 산다. 물고기 씨가 마르지 않게 하려면 가구당 일주일에 세 마리만 잡아야 한다. 그런데 가족 A가 남몰래 일주일에 네 마리, 그 다음주에는 여섯 마리를 잡았다. 들키지 않자 더 대담해져 일주일에 열 마리씩 잡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의 포획량은 계속 줄었다.  
 
그러자 피해를 보던 가족 B가 호수에 사는 물고기를 모두 잡아버렸다. 가족 A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가족 B처럼 물고기 씨를 말리는 극단적 배신행위를 하는 주체가 나타난다. 서로에 대한 배신이 마을 공유지인 호수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배신 행위를 국가 간 관계로 확대하면 어떨까.
 
코로나19 탓에 대부분의 나라가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가뜩이나 각자도생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체제를 개편하고 무역정책을 바꾸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세계화 시대에 무역이나 다른 나라 기업의 진출을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으니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유력한 카드다.  
 
자본은 일찌감치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연간 8500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기후위기는 곧 투자 리스크’라고 밝혔다. 화석연료의 대표 격인 석탄은 투자 리스크 덩어리다. 투자자들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소문만으로 석탄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발을 뺐다. 지난해 말 기준 석탄발전소 착공량은 2015년 대비 66% 줄었다.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 데도 두산중공업은 달랐다. 석탄발전소 사업을 고집했다. 이런 등의 이유로 지난 5년간 누적 순손실이 2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주가는 지난 10년간 96% 떨어졌다. 정부는 경영난에 빠진 두산중공업을 살리려고 국책은행 중심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석탄사업 청산 등의 경영 쇄신 요구는 없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두산중공업에 친환경 에너지 사업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나가서 석탄발전소를 더 지으라고 공적기관들까지 동원해 부추긴다는 것이다. 주요국이 기후위기 해결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린뉴딜 도입을 선언하고도 석탄사업에서 손을 떼지 않는 한국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한국을 공유지 파괴의 배신자로 여기지 않을까.
 
가중처벌은 배신자를 다루는 데 아주 유효하다. 양자가 게임의 룰을 합의해 정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임을 벌인다고 가정하자. 게임 참여자 A가 이전 판에 합의를 어기고 배반하면 또 다른 참여자 B는 두 번 연속 상대를 배신한다. 배반에 대한 응징의 효과를 2배로 올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A가 다시 배신하면, B는 세 판 연속 배신해 응징한다.  
 
각국이 보호무역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기후위기 측면에서 한국의 배신행위를 막을 방법이 응징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7월 그린뉴딜 정책 발표를 앞두고 벌써부터 걱정이다.
 
해외 석탄발전 투자 공들이는 한전의 딜레마
한국전력과 두산중공업이 인도네시아에 짓는 석탄화력발전소 자와(JAWA) 9·10호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와 9·10호기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자와 지역에 1GW(기가와트)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짓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3조5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전력은 지분 투자자이자 발전소 운영사로, 두산중공업은 발전소 시공사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한국전력은 즉각 반발하며 ‘KDI가 해외 사업 특성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예비타당성 조사를 재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KDI는 이례적으로 2차 타당성 조사를 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KDI에 따르면 사업 운영 기간(25년)의 수입과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사업가치는 -4358만 달러(약 -530억원)다. 이 탓에 한전은 순손실 708만 달러(약 85억원)를 떠안아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전은 실적 부진을 만회하고 석탄발전소 추가 수주 기회를 엿보기 위해 자와 9·10호기 프로젝트에 매달려왔다. 국내외 환경단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 반하는 사업이라고 평가하며 한국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사업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1분기에 800개 이상의 투자기업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점에서 평가했다. 한전은 블랙록의 투자기업 중 하나다. 블랙록은 한전에 석탄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구체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며 필요하면 이사 선임 반대 등 주주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최악의 경우 블랙록의 투자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와 발전소 2기의 시공 업체인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3월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 금액은 1조6000억원이다. KDI 1차 예비타당성 보고서에 따르면 자와 사업의 EPC(설계·조달·시공) 금액은 19억500만 달러다. 시공 원가보다 5억5000만 달러(약 6600억원)나 많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프로그램 국장
서울사무소 및 홍콩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2017~201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 소재 그린피스 인터내셔널(본사)에서 석유 관련 선임 전략가로도 활동했다. 한국이 2050년 탄소순배출 제로와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전환 등 기후위기 분야에서도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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