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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지방시대] 세계 동시 ‘쇄국’…근거리 작은 여행이 관광 살린다

중앙일보 2020.06.26 00:17 종합 24면 지면보기

코로나가 빚은 관광 빙하기

코로나19로 국내외 관광이 유례없는 곤경에 처한 가운데 국내 관광이 조금씩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경 봉쇄로 해외 여행이 어려워지자 국내 여행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지난 19일 김해국제공항 국내선 대합실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코로나19로 국내외 관광이 유례없는 곤경에 처한 가운데 국내 관광이 조금씩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경 봉쇄로 해외 여행이 어려워지자 국내 여행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지난 19일 김해국제공항 국내선 대합실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0일 오전 11시 경북 경주시 황리단길. 지명인 황남동과 서울 경리단길을 합쳐 이름 지은 천마총 옆 일대 골목길은 젊었다. 20~30대들이 길 양쪽을 하나둘씩 메웠다. 명소 나들이의 설렘과 즐거움이 더위 속 마스크의 불편을 이기는 듯했다. 주차장은 거의 찼고, 주변 길가도 주차 행렬이었다. 한옥과 카페·맛집 등이 어우러진 경주의 핫플레이스는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부산서 아내·아이와 온 김말봉(37)씨는 “지난 겨울에 왔다가 코로나19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반년 만에 다시 찾았다”며 “모처럼 온 김에 1박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광객은 대구·울산·부산 등 근거리의 재방문객(repeater)이 많았다. 김향숙 문화해설사는 “코로나19 전 주말 골목길은 인산인해였다”며 “3~4월엔 관광객이 드문드문하다가 지금은 예년의 20~30% 수준을 회복했다”고 했다.
 

2~5월 국내 공항 이용객 68% 감소
외국인 입국, 3월 -95% 4월 -98%
국제관광도 위기…손실 1조달러도
관광 인프라·콘텐트 재정비 기회

관광 도시 경주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2~5월 내방객 수가 100만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줄었다. 불국사·석굴암 등 24개 주요 관광 지점을 조사한 결과다. 위안거리는 회복 추세다. 지난해 대비 월별 비율이 3월 19%→4월 23%→5월 40%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북 전체도 경주와 비슷한 흐름이다.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월 31%→4월 34%→5월 45%로 상승세다(주요 관광지점 307곳 기준). 외국인 발걸음이 뚝 끊기고, 내국인도 장거리 여행을 꺼리는 상황에서 권역 내 여행이 되살아나면서다. 경북도청 송호준 관광마케팅과장은 “대구경북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했지만, 하반기에는 전년 대비 70%로 올라갈 것으로 보고 전략을 짜고 있다”고 했다.
 
국내 항공 여행도 숨통을 트는 분위기다. 21일 오전 10시 30분쯤 대구국제공항. 2월 말~3월 텅 비다시피 했던 공항 청사에 제주행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제주 노선만 운항하는 국내선 편수(출발+도착)는 3월 하루 평균 약 5편에서 4월 14편, 5월 35편으로 늘어났다. 하루 약 30편이던 국제선 운항은 2월 말 이래 중단된 상태다. 공항 관계자는 “국내선 운항은 코로나19 이전의 하루 평균 37편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4, 5월 탑승률은 약 64%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10여% 떨어진다”고 말했다. 청사 1층의 렌터카 업체 직원은 “2, 3월엔 손님이 거의 끊겼다가 5월 들어 예약이 늘고 있다”며 “매출은 아직 코로나 이전의 약 4분의 1수준”이라고 했다. 올 2~5월 내외국인 국내 공항 이용객은 1642만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51만여명)의 32%다.
  
여행사·관광운수업 가장 어려울 것
 
코로나가 빚은 관광

코로나가 빚은 관광

국내 관광 축소는 안심·안전 여행 추구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관광공사가 2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5%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2월 23일~5월 5일) 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응답자의 연간 여행계획 횟수는 평균 6회였지만 1.8회로 줄었다. 향후 여행에 대해선 “예방수칙을 잘 지킨다면 가도 괜찮다”는 응답이 30%,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가 70%였다. 코로나19가 안정되지 않으면 국내 여행 수요의 급반등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경기 악화와 가계 소득 감소도 악재다.
 
그래도 국내 여행은 나은 편이다. 방한 외국인(인바운드)은 급전직하했다. 올 3월과 4월 인바운드는 8만3497명, 2만94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4.6%, 98.2% 감소했다(관광지식정보시스템). 쇄국에 가까운 국경 봉쇄와 여행 제한 여파다. 하지만 아직 해금의 조짐은 없다. 코로나19는 지금 남반구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24일 기준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나라(지역 포함)는 139개국이다. 9개국은 입국 후 시설 격리를, 34개국은 사증 발급 중단, 자가 격리 등 조치를 내렸다(외교부 자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관광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자. 올 1분기 관광업 전체 지수가 31.3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57.3포인트 내려앉았다. 이중 관광쇼핑업은 가장 타격을 받아 84.9포인트 빠졌다. 상위권 여행사와 항공업체는 1분기 적자로 돌아섰다. 연구원은 2분기 전망에 대해 “관광산업의 모든 업종이 부진할 것이며, 여행사·관광운수업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관광 일자리 1억여개 없어져
 
코로나가 빚은 관광

코로나가 빚은 관광

글로벌 한국의 관광 현주소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세계 관광산업도 유례없는 위기다. 관광산업의 세계 GDP 비중은 약 10%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국제 관광객 수(지난해 14억6200만명) 추이를 보자. 올 1~4월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 감소했다. 4월 관광객은 마이너스 97%를 기록했다. 일본은 외국인 입국이 4월 2900명, 5월 1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9% 빠졌다. 이동 제한에 따른 1~4월 국제관광 수입 감소액은 1950억 달러(약 234조원)다.
 
이 기구가 공표한 올해 3개 시나리오는 암울하다. 국경 봉쇄와 여행 제한 해제 시점이 7월이면 지난해 대비 관광객 수는 58% 줄어든다. 9월이면 마이너스 70%가, 12월이면 마이너스 78%가 된다. 관광객 78% 감소 시 손실액은 1조 달러를 넘는다. 2009년 세계 경제위기 당시 관광 감소액의 약 14배 규모다. GDP 대비 관광 비중이 높은 유럽의 이웃 국가끼리 국경 개방에 나선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UNWTO는 올해 관광산업 일자리도 1억~1억2000만개 없어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카지노와 호텔의 메카인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의 4월 실업률은 28%, 하와이주는 22%였다. 내수가 견인하지 않는 한 관광산업은 당분간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 정부·지자체, 해외 각국이 숙박 할인 쿠폰제와 관광지 할인 등 수요 진작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보다 과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여행 재발견, 관광 컨트롤 타워 과제로
팬데믹 시대의 관광 빙하기는 내수나 인바운드 관광 전략을 재점검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관광에 대한 의식 변화 때문이다. 코로나와의 동거(With Corona)로 관광의 일상도 바뀌었다.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는 안전한 관광이 우선순위가 됐다. 일본 호시노리조트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는 “지금까지 여행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야외활동을 즐기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면 앞으로는 스트레스와 공포로부터의 해방이 중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니혼게이자이신문).
 
국내 관광의 재발견은 불가결하다. 해외 관광(아웃바운드)의 잠재 수요를 국내로 흡수할 수 있도록 지역의 매력을 발굴하고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 정창욱 국민관광전략팀장은 “코로나 시대에 맞는 국민 맞춤형 여행상품을 개발·육성하고, 지역 소득 증대를 유도하는 착한 관광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2시간의 근거리 작은 여행(micro tourism)은 업계와 지역에 활력소다. 작은 여행은 결국 인바운드의 발판이다.
 
관광 인프라와 콘텐트 정비도 빼놓을 수 없다. 오용수 대구관광뷰로 대표(전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장)는 “지금은 대증(對症)요법이나 일과성 마케팅보다는 관광의 ABC인 교통·숙박·음식 분야 등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개선을 통해 외국인 수용 태세를 관광 선진국 수준으로 바꿔나갈 때”라고 주문한다. 관련 리스트는 길다. 관광지의 점→선→면 확대, 근대산업유산의 관광지 정비, 외국인 친화적 안내판과 다언어 해설, 즉시 환급형 면세점 확충 등등.
 
관광 전략의 체계적 수립을 위한 정부 조직 개편도 과제다. 마침 김석기 의원(미래통합당)이 지난 15일 관광청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코로나19 등으로 급변하는 관광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 내 컨트롤 타워가 없는 데다 관광 관련 행정 기능이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10개 부처에 분산돼 있어 관광 정책 효율성에 한계가 있다”고 배경을 밝혔다.
 
현재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관광 행정 관장 정부 기관을, 미국은 민관 조직(브랜드 USA)을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관광 입국을 위해선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다. 코로나의 덫에 걸린 글로벌화의 수레바퀴가 다시 돌 때를 대비할 때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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