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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규직화가 왜 나쁘냐’고 오도할 일 아니다

중앙일보 2020.06.26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 요원 정규직 전환 방침에 대한 분노와 혼란이 갈수록 더 거세지고 있다.
 

정규직화 논란의 본질은 공정성 훼손
사람이 아닌 자리의 정규직화가 옳아

지난 23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 글은 단 사흘 만에 정부가 직접 답해야 할 기준인 동의자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공사의 방침이 고용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공사 정규직 노조는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정규직화가 결정된 다른 직역 노동자들도 비판 성명을 냈다.
 
분노의 출발점은 공사의 정규직화가 원칙이 없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기업이다. 당연히 채용시험을 봤다 떨어진 사람도 많다. 그런데 특정 시점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는 이유로 공개 선발 과정 없이 정규직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논리다. 직역 간, 같은 직역 내에서도 입사 시점에 따라 정규직 전환 방식이 다른 무원칙도 혼란과 갈등을 불러왔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내놓은 해명은 들끓는 분노에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TV와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청년 취업준비생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의 전 사장 시절 대통령 앞에서 1만 명 정규직화를 보고한 뒤 국회에 입성한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열심히 일하면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원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라고 주장했다.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을 정규직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발언이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좋은 일자리에 갈 사람이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정규직화는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하자는 것이지 특정 사람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라면 우선 전환 대상 자리를 정하고, 외부에도 문호를 연 공개 채용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하는 비정규직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 적절히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는 투명한 과정보다 ‘대통령 발언의 실현’에만 집착하다 생긴 참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황 수석은 850여 개 공공기관 전체에 대해 정부가 일일이 고용 방식을 정해 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세밀히 신경 쓰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청와대와 정부가 해야 할 갈등 관리 아닌가. 180석을 쓸어간 여당도 “입장을 낼 사안이 아니다”며 정부 뒤로 숨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 해법을 중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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