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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그나마 코로나 습격 피한 日, 비결은 10년전 도요타 변신

중앙일보 2020.06.25 05:00
개방형 조달 구조와 공급선 다양화로 일본 완성차 업체가 한국에 비해 코로나19 타격이 적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기타큐슈의 렉서스 미야타 공장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렉서스

개방형 조달 구조와 공급선 다양화로 일본 완성차 업체가 한국에 비해 코로나19 타격이 적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기타큐슈의 렉서스 미야타 공장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렉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자동차 부품 생태계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경우 개방형 조달 구조와 공급선 다양화로 피해를 줄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한·일 자동차산업 영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 산업은 한국과 같은 전속 거래 구조를 타파해 코로나19의 피해를 줄였다. 전속 거래란 대형 완성차 업체가 계열사, 1·2·3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수직계열 공급망이다.  
 
일본도 2010년대 이전엔 ‘게이레츠(系列)’ 부품 공급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2009년 도요타 대량 리콜 사태 이후 개방형 구조로 변화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자동차 부품 생태계는 중·저 신용등급의 2·3차 협력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빠졌지만, 완성차 공장 ‘셧다운’과 생산 감소 속에서도 일본 자동차 부품 생태계는 비교적 타격이 작았다.
 

‘현대차 롤모델’이던 도요타의 변신 

대기업에 목매는 한국, 공급선 넓힌 일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기업에 목매는 한국, 공급선 넓힌 일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적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는 2010년대 이후 개방형 조달 구조로 변신했다. 현대·기아차의 롤모델이었던 도요타 역시 과거엔 전속 거래 관행을 갖고 있었지만 부품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했고, 현대·기아차와 국내 완성차 업체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도요타는 2015년 이후엔 계열 글로벌 부품업체인 덴소·아이신의 모기업 의존도를 50%대 밑으로 낮췄다. 1차 협력업체의 구성비는 기계부품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장부품 및 기계부품의 구매 비중 역시 자회사인 덴소·아이신 외에 콘티넨털 등 글로벌 경쟁업체로 확대해 경쟁 체제를 유도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공급선 다변화 현황을 보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5곳 이상 되는 곳에 납품하는 부품업체 비중을 보면 한국은 전체의 8.3%에 불과한 반면, 일본 부품업체는 절반이 넘는 52.6%로 조사됐다. 한 곳에만 납품하는 전속 거래 비중은 한국이 45%, 일본은 7.2%에 그쳤다.
 코로나19 여파로 완성차 생산량이 줄면서 경기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의 생산설비가 멈춰 있다. 안성=김영주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완성차 생산량이 줄면서 경기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의 생산설비가 멈춰 있다. 안성=김영주 기자

코로나19 초기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배선뭉치인 중국산 ‘와이어링 하니스’를 공급받지 못해 공장이 ‘셧다운’됐다. 일본도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니스를 공급받기 때문에 일부 타격이 있었지만, 동남아 등 공급선을 대체하면서 쉽게 ‘셧다운’을 벗어났다.  
 

일본車의 든든한 뒷배, 동남아 시장

일본 혼다의 경우 중국 우한에서 생산하는 와이어링 하니스 대신 필리핀산으로 대체했다. 실제로 전선·케이블류의 중국 수입 비중은 한국이 75.3%에 달하는 반면, 일본은 말레이시아(46.1%)·중국(35.2%) 등 다변화해 코로나19의 위협요인을 회피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으로 부품 공급망 및 주력 시장을 다변화한 것도 일본 자동차 산업이 한국보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덜 받은 요인이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1958년 아세안과 상호인정협정(MRA)을 체결한 뒤 부품 생태계, 판매 시장을 확대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전선·케이블류 수입 국가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과 일본의 전선·케이블류 수입 국가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동남아는 일본 완성차 업체의 ‘텃밭’이자, 미국·유럽 등 주력 시장의 변동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2018년 기준 일본 완성차 업체는 아세안 국가에 104개의 공장을 운영하면서 15만명을 고용한다. 완성차 기준 현지에서 연간 388만대를 생산해 302만대를 아세안 시장에 판매했다.  
 

부품 생태계 혁신 급선무 

미주·유럽에 비해 가까운 시장이다 보니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의 국내 이전)도 가능하다. 일본 도요타(2017년)와 혼다(2016년)는 각각 미국과 멕시코의 일부 완성차 생산라인을 국내로 이전했는데, 수출 물류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변신은 한국 자동차 부품 생태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금융기관이 2조원을 쏟아붓더라도 대기업 전속 구조를 타파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며, 부품업체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는 모습.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1960년대부터 부품 공급처를 동남아로 확대해 시장 변동에 대응해 왔다. 사진 도요타 인도네시아

도요타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는 모습.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1960년대부터 부품 공급처를 동남아로 확대해 시장 변동에 대응해 왔다. 사진 도요타 인도네시아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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