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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공모주

중앙일보 2020.06.25 00:19 종합 33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동안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이 들썩거렸다. 대어급 공모주 SK바이오팜 청약이란 큰 장이 섰기 때문이다. 주식계좌를 새로 텄다, 난생 처음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았다, 부부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꽉 채워 ‘영끌(영혼을 끌어모음)’했다…. 열기가 꽤 뜨겁다 싶더니만 과연. 청약증거금 31조원이란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런 장면, 익숙하다. 주기적으로 한국 증시는 주식청약 열풍에 휩싸이곤 했다.
 
1988년 포항제철(포스코), 1989년 한국전력 국민주 청약이 그랬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국민주라는 이름으로 공모를 했다. 마침 증시 활황기였다. 포항제철에 312만명, 한국전력은 643만명이 몰렸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청약할 수 있는 사람은 다 한 셈이었다.
 
국민주는 주식투자 대중화를 이끌었다. 국민주 우선배정으로 주식시장에 눈 뜬 농민들이 영농자금, 논 판 돈까지 들고 주식투자에 나서는 바람에 농협이 ‘농민들의 재산피해가 우려된다’며 대책 마련을 정부에 건의할 정도였다.
 
하지만 국민 재산증식이란 목표로 보면 대체로 마이너스였다는 평가다. 단기에 너무 많은 주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증시가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1999~2000년. 코스닥 시장에 기업공개가 봇물을 이루며 공모주 청약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1999년 11월 공모가 1만원으로 상장한 다음커뮤니케이션 주가는 그해 연말 38만원대로 급등했다.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으려고 대출을 받고 가족 명의 계좌를 만드는 등, 이 때도 투자자들은 열성이었다.
 
청약증거금이 10조원을 돌파한 건 1999년 담배인삼공사(KT&G, 11조5700억원)가 처음이었다. 1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이 기록을 2010년 삼성생명(19조8000억원), 2014년 제일모직(30조원)이 경신하더니 이번에 다시 새역사를 썼다.
 
공모주는 기간한정 할인판매 상품이다. 면세점의 ‘재고 떨이’ 명품백만큼이나 물량이 제한돼있지만, 1주라도 사긴 살 수 있으니 더 낫다. 청약증거금 순서대로 주식수가 결정되니 기준도 단순하다. 무엇보다 실패 확률은 낮은데 대박의 기대감은 충만하다. 이 뜨거운 투자열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한애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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