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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중대결심 앞두고 절 들어갔다, 주호영으로 본 '사찰정치'

중앙일보 2020.06.24 14:28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약 열흘간(15일~24일)의 ‘사찰 칩거’를 끝내고 24일 국회로 복귀하기로 하면서 그가 ‘사찰 정치’에 나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전날(23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고성 화엄사를 찾아 회동한 만큼, 여당을 향한 무력시위 성격이 짙다는 게 일반론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실제 과거 정치인들이 ‘사찰 칩거’에 들어간 배경도 복합적이었다.

 

①이재오의 무력시위

14일 오후 전남 순천 선암사의 팔상전에서 절에서 제공한 옷을 입고 참선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 전당대회 뒤 당무에 불참하고 있는 이 최고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강재섭 대표가 서울에서 내려와 참선이 끝나길 서서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14일 오후 전남 순천 선암사의 팔상전에서 절에서 제공한 옷을 입고 참선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 전당대회 뒤 당무에 불참하고 있는 이 최고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강재섭 대표가 서울에서 내려와 참선이 끝나길 서서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7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순천 선암사에 들어갔다. 당시 ‘7ㆍ11전당 대회’에서 당권 경쟁을 벌였던 강재섭 대표가 이 최고위원을 향해 ‘색깔론’을 제기해서다. “10년간 한솥밥을 먹던 식구에게 색깔론 시비를 당했으니 울화를 토해내는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심재철 의원)며 당시 ‘친이계’가 이재오 지원사격에 나서는 등 세 대결 양상도 나타났다.

 
“동네 이장 선거도 끝나면 후유증이 있다”며 버티던 강 대표는 결국 칩거 이튿날(14일) 이 최고위원을 만나러 선암사를 찾았다. 이 최고위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당직 인선도 늦췄다. 최고위원직 사퇴를 고민하던 이 최고위원은 나흘만(17일)에 당무에 복귀했다. 그는 선암사를 떠나며 “수재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다. 분노도 미움도 슬픔도 내 마음의 바다에 쓸어안고 산사를 떠난다”고 했다.

 

②정세균의 '하심'

민주당 정세균 대표 (中 ) 가 2009년 1월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용산참사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 정세균 대표 (中 ) 가 2009년 1월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용산참사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독교 신자인 정세균 국무총리는 야당(민주당) 대표 시절인 2009년 1월, 설 연휴 기간(1월 26일~27일) 남양주 금선사에 칩거한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은 ‘1차 입법 전쟁’으로 지지율이 상승 추세에 있었고, 1ㆍ19개각에 맞물려 터진 용산참사(1월 20일)로 대여 공세에 고삐를 죄던 참이었다. 이런 가운데 야당 대표가 외부 연락을 끊고 연초 정국 구상을 위해 사찰을 찾으며 관심도 집중됐다.

 
정 총리는 당시 칩거를 끝낸 뒤 ‘하심(下心ㆍ마음을 낮추라)’을 화두로 제시했다. “형편이 어려운 국민을 살피고 그들 마음속에 들어가라는 의미”(최재성 당시 대변인)라는 해석처럼, 정 대표는 사찰을 나온 직후 용산 참사와 관련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 대표가 잠재적 대권 주자군으로서 입지를 넓혀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③오세훈의 주민투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선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선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천주교 신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7월 25일 서울 진관사를 찾았다. 무상급식 주민투표(8월 24일)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시장직 사퇴 등도 이때 고민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 3시 잠에서 깼다는 오 전 시장은 진관사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문제”라며 주민투표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소속당(한나라당)에 지원 사격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도 깔린 것으로 보였다.

 
오 전 시장은 이 밖에도 2006년 서울시장 당선 직후, 2010년 무상급식 조례 통과 직후 등 중요 고비마다 진관사를 찾았다.  
 

④주호영은 왜?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 사흘째 머무는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 사흘째 머무는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원내대표의 이번 ‘사찰 칩거’는 열흘가량으로 이재오(4일)ㆍ정세균(2일)ㆍ오세훈(2일) 등에 비해 길었다. 방문한 사찰도 10여곳에 이른다. 그런 만큼 복합적인 의도가 배어있다는 분석이다.

 
관례를 깨고 법사위원장을 차지한 여당에 대한 강력한 항의도 있지만, 당 내부를 향한 불만 섞인 감정도 녹아있다는 게 당 안팎의 관측이다. 통합당에서는 “법사위원장을 갖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18개 위원장을 민주당이 전부 가져가는 게 맞다”는 다수론과 “상임위원장 자리 7개라도 확보하는 게 맞다”는 일부 중진의원 의견이 엇갈려왔다. 이 와중에 원내지도부 책임론도 스멀스멀 나오곤 했다.
 
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법사위원장을 뺏기고 나서 본인이 사퇴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돌아오기엔 명분이 적었을 것"이라며 "대여 강경노선의 의지를 확실히 다지는 차원에서도 10일간의 사찰 칩거는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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