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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원이엄마 길, 원이엄마 공원…안동 땅부자인가 했는데

중앙일보 2020.06.24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46)  

 
능소화는 높은 곳이면 어떤 것이라도 타고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듯 하지만 자기 몸에 손을 대기만 해도 꽃을 통째로 툭 떨구는 자존심 강한 꽃으로 불린다. [사진 Pixabay]

능소화는 높은 곳이면 어떤 것이라도 타고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듯 하지만 자기 몸에 손을 대기만 해도 꽃을 통째로 툭 떨구는 자존심 강한 꽃으로 불린다. [사진 Pixabay]

 
6월부터 화려한 자태를 선보이며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꽃나무가 있다. 능소화다. 장미, 패랭이 등등 화려한 봄꽃이 다 지고 나면 꽃들이 숨 고르기 하듯이 잠시 쉬는 시간에, 수줍은 색으로 옷을 입은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능소화는 금동화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엔 사찰이나 양반집 고가에 심어 양반 꽃이라 불릴 만큼 일반 집에는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능소화의 전설은 궁궐에 살던 한 궁녀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예뻐서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소화는 다른 궁녀들의 시샘으로 궁에서 쫓겨나고, 임금을 사모하던 그는 날마다 높은 궁궐을 깨금질하며 임금을 보기 위해 애태우다가 상사병으로 죽는다. 한여름이 되면 그의 무덤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던 줄기에서 곱게 화장한 듯한 꽃이 피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화가 높은 궁궐을 바라보며 애태우던 한을 생각하여 능소화라 지었다 한다. 능소화는 높은 곳이면 어떤 것이라도 타고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듯 하지만 자기 몸에 손을 대기만 해도 꽃을 통째로 툭 떨구는 자존심 강한 꽃으로 불린다.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지조였을까.
 
꽃이 질 때도 한잎 한잎 초라하게 떨어지지 않고 동백꽃처럼 봉오리째 뚝 떨어진다. 화려한 동백꽃이 ‘날 좀 봐 주세요’라고 표현한다면, 능소화는 잎 사이에 숨어 은은한 감성으로 ‘네가 나를 찾아오라’ 손짓한다. 능소화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짝사랑하다 응어리진 한이 있다. 황홀함에 젖어 슬쩍 만지기라도 하면 톡 떨어져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게 한다. 그래서 능소화 꽃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멀어진다고 했다.
 
 
지역마다 계절 따라 꽃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안동에도 능소화가 만발한 길이 있다. ‘원이엄마 공원’이다. 잠시 원이엄마 스토리로 들어가 본다. 처음 안동에 이사 내려와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원이엄마의 길’, ‘원이엄마 공원’, 원이엄마를 그리며 만든 ‘월령대’를 만났다. ‘원이엄마라는 사람은 부동산이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던 무식한 나의 정체가 밝혀진 때이기도 하다.
 
안동에 사는 분들은 다 아는 원이엄마 이야기는 1998년 택지지구 개발과정에서 ‘철성 이씨(고성 이씨의 옛 이름)’라고 적힌 무덤을 이장하면서 450여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이야기다. 안동대 박물관 연구사에 의하면 이응태란 선비와 어느 양반집 규수의 무덤에는 원이엄마라는 아내가 쓴 편지와 그의 치마, 여인의 머리카락으로 엮은 미투리라는 신발이 미이라와 함께 원형대로 발견되었다 한다. 여러 편의 편지도 있었는데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연구 자료가 되었다. 뱃속에 유복자를 둔 서른 안팎의 애달픈 여인, 눈물을 참고 먹을 갈아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편지에는 남편을 향한 마음과 홀로 남은 서러움, 태어날 아이로 인해 따라가지 못하는 애절함까지 녹아있다.
 
원이엄마테마공원. [사진 안동축제관광재단]

원이엄마테마공원. [사진 안동축제관광재단]

이응태 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의 한글 편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응태 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의 한글 편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편지는 원이엄마의 사랑편지로 알려져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고고학 저널에 표지로 실리기도 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처럼 애달픈 여인의 모습으로 피어난 능소화 길을 잠시 원이엄마가 되어 걷는다.
 
관점을 바꾸어 높은 곳을 올라가 꽃을 떨구는 능소화나무를 인생살이에 비유해 본다. 능소화는 혼자의 힘으론 곧추서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기대야 클 수 있는 나무다. 어떤 존재든 기댈 곳만 있으면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주렁주렁 매단다.
 
코로나19 사태로 타인과의 거리두기와 함께 감성이 사라지는 요즘, 홀로서기로 잘 피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는 내 인생의 꽃도, 기댈 곳 없이 홀로 이루어질까 반성한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를 바라본다. 시간이 흘러 지겹고 미운, 그래서 서로에게 더 측은한 나의 가족 형제들, 그러나 나의 깨금발을 받쳐주고 손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가족, 형제, 이웃들이다. 모두가 힘든 지금,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며 화려하게 꽃피우는 능소화처럼 서로 기대고 살면서 이 고난을 넘기고 볼 일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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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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