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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거부권보다 생명권 중요” 의료진 폭행 만취男에 벌금형

중앙일보 2020.06.24 06:00
2018년 7월 31일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머리를 다친 전공의가 병상에 앉아 치료받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사진 대한의사협회]

2018년 7월 31일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머리를 다친 전공의가 병상에 앉아 치료받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사진 대한의사협회]

만취한 상태로 응급실에 입원한 뒤 "xx 진료를 거부하겠다"며 간호사를 폭행한 A씨에게 지난 4일 대법원이 벌금 500만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자신에게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목적으로 몸부림을 쳤으며, 당시 응급실엔 자신 외에 다른 환자가 없었다며 무죄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앞선 항소심에서 "환자에게 응급 진료행위를 거부할 권리가 있더라도 생명권의 보장을 위해선 그 권리가 일부 제약될 수 있다"고 판단한 데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진료를 거부하며 의료진을 폭행한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치 않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이다.
 

간호사 폭행 사건의 재구성 

A씨는 2018년 어느날 새벽 2시부터 지인과 술을 마신 뒤, 만취 상태에서 질병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새벽 6시 4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해당 질병은 생명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진 않았다. A씨는 수술을 요청하며 수액을 맞았다. 이후 간호사가 심전도 검사를 시도하자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폭언을 했고, 간호사를 발로 차고 위협하며 "갈거야"라고 수차례 말했다. A씨는 의료진을 폭행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됐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해당 법령의 형량은 징역 5년 이하, 5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2018년 7월 서울 경찰청 앞에서 열린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의료인 폭행사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018년 7월 서울 경찰청 앞에서 열린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의료인 폭행사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갈거야"라며 수차례 진료 거부 의사를 밝혔기에 간호사에 대한 폭행은 '항의의 몸부림'이자 정당방위라 주장했다. 또한 당시 응급실에 A씨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응급의료법 위반은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진료를 방해할 때 적용되는데 A씨의 행동으로 피해를 받은 환자가 A씨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법원은 왜 A씨 주장을 거부했나 

법원은 하지만 두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방당위의 경우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갈거야"라고 말한 것만으로 치료 거부 의사가 명확지 않은 점 ▶당시 동행한 보호자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점 ▶간호사가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폭행 당시 응급실에 피고인만 있어 다른 환자의 의료행위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응급의료법은 의료인의 실질적 진료권을 보장하는 취지"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폭행을 동반해 자신의 진료를 거부한 행위도 불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법원은 "생명권의 보장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에선 피고인의 자기결정권(진료 거부권)이 일부 제약될 있다"고 밝혔고 대법원도 이 판단에 동의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는 "법원이 진료거부권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응급실에서 폭행을 동반한 거부행위는 불법이라 본 것"이라 말했다.
 
주취자가 전공의를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CCTV영상. *이 기사와 상관 없음. [대한의사협회 캡처]

주취자가 전공의를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CCTV영상. *이 기사와 상관 없음. [대한의사협회 캡처]

진료거부권을 행사하려면…

이번 판결은 응급한 상황에서 개인의 진료거부권을 제한한 대법원의 판단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 도진기 변호사는 "환자의 진료거부권의 행사와 그 한계에 대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다"며 "진료를 거부할 경우 환자는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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