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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KDI 대학원장 "경제 성곽시대 회귀 재앙, 문명적 퇴행"

중앙일보 2020.06.24 05:00 종합 8면 지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 대유행, 팬데믹 선언 후 석 달이 넘었다. 대봉쇄와 대침체가 뒤를 이었다.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해 많은 나라들이 봉쇄를 해제하고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가운데 일일 확진자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부질없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팬데믹의 종식까지 우리는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터널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장. 연합뉴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장.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 5대 전환 

코로나19는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첫째, 효율과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던 초세계화 시대의 종언이다. 위험과 회복 탄력성을 고려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은 불가피하다. 둘째, 시장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의 귀환이다. 감염병 위기 속에서 시장의 실패와 유능한 정부의 효과성을 확인했고,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셋째,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디지털 전환이 성큼 다가왔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비대면 서비스가 급증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활용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넷째,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파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보여주면서 끔찍한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 묻고 있다. 녹색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다섯째, 부자들이 바이러스를 옮기고 이들을 위해 필수노동을 제공하던 빈자들이 목숨을 잃는 현실은 오늘날의 극단적 불평등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의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초세계화, 신자유주의, 디지털 전환, 녹색 전환, 불평등이라는 다섯 가지 변화의 화두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1세기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다. 다보스포럼의 주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적어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 문제들이 급박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은 차일피일 미루고 엉뚱하게 외국의 음모와 불공정 경쟁, 이민자와 난민, 소수민족과 사회적 약자 등에게 화살을 돌리는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코로나19는 더 이상 숙제를 미루면 안 된다는, 자연이 인류에게 보내는 절박한 경고다. 
 
팬데믹의 한 가운데서 변화는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은 역사적 위기에는 진취적 가능성과 퇴행적 가능성이 모두 잠재돼 있음을 알려준다. 유럽의 흑사병이 중세 암흑시대와 봉건제에 종지부를 찍고 르네상스와 자본주의 맹아를 낳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유럽의 얘기다. 동유럽에서는 영주들의 가혹한 억압으로 오히려 농노제가 강화되고 경제발전이 뒤처졌다. 스페인 독감 이후 국제협력주의의 좌절과 자국우선주의의 득세는 결국 대공황과 파시즘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야 유엔(UN)과 브레튼우즈 체제를 중심으로 개방과 협력을 향한 진취적 변화가 이뤄졌다. 
 

"시장 역동성과 민주적 통제 결합해야" 

과연 포스트 코로나 세계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팬데믹의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자국 우선주의와 배타주의의 퇴행적 흐름이 강화되는 한편, 감염병 방역과 기후변화 대응 등 글로벌 공공재를 위한 국제 공조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곽시대 회귀는 경제적 재앙이고 문명적 퇴행이다. 개방적 경제 질서를 유지하면서, 초세계화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글로벌 거버넌스를 강화해나가는 새로운 세계화를 지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경제 개입 확대가 자칫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나아가 파시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에 입각해 형평성과 공공성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대량 실업과 불평등 심화, 그리고 감시 자본주의를 낳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용적인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유가 하락이 화석연료 의존을 조장하면 큰 일이다. 감염병 급증을 비롯 갈수록 심각한 재앙을 일으키는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를 막아내기 위해 지속가능한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팬데믹이 폭로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지만,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는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변화의 에너지가 불평등 완화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과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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