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멸종위기 ‘주먹대장’ 살려라, 흰발농게 4만마리 이주 대작전

중앙일보 2020.06.24 05:00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안녕, 나는 '흰발농게'라고 해. 수컷의 큰 집게발이 흰색이어서 흰발농게라 부르지. 사람들은 나를 '주먹 대장'이라고도 불러. 한쪽 집게다리가 유달리 커서 얻은 자랑스러운 별명이지. 
 

전북 군산시, 흰발농게 이주 작전 돌입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개통후 관광객 늘어
갯벌 매립해 산책로·녹지공간 조성키로

선유도해수욕장 700m구간 수만 마리
다음 달까지 인근 갯벌로 옮기는 작업
한쪽 집게다리 유달리 커 '주먹 대장'

 달랑겟과 갑각류인 우리는 남해안과 서해안에 분포해. 하지만 갯벌 매립과 해안 개발로 개체 수가 급감하자 2012년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지. 갑각(갑각류의 등) 길이 약 1㎝, 갑각 너비 약 1.5㎝로 크기는 작지만 귀하신 몸이라고.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이야. 이곳에만 우리 종족 63만여 마리가 모여 살지. 선유도해수욕장 일대가 국내 최대 흰발농게 서식처로 꼽히는 이유야.
 
 그런데 이제 선유도해수욕장을 따라 설치된 도로 인근 갯벌에 사는 우리 중 일부는 이사를 가야 해. 땅값이 올라서냐고? 농담도 참…. 우리는 수직으로 굴을 파서 살거든? 인간처럼 땅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어쨌든 인간 때문에 옮기는 건 맞아. 선유도가 예전에는 말 그대로 육지에서 떨어진 '도서 벽지'였대. 그런데 2017년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를 잇는 고군산군도 연결도로(8.77㎞)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엄청 늘어난 거지. 그만큼 군산시의 고민도 깊어졌어. 섬은 옛날 그대로인데 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거지. 기존 개발 용지도 좁고 말이야. 그래서 갯벌 매립에서 답을 찾았대. 공무원들이 '유레카(알아냈다)'를 외친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발견했어. 그게 바로 우리야.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인위적으로 내쫓거나 몰살했다가는 환경단체 등이 가만 놔두나. 
 
 군산시는 우리와 함께 사는 '공생(共生)'의 길을 택했어. 당초 계획도 대폭 수정했지. 우리가 사는 갯벌 일부(1만7000여㎡)를 매립해 산책로와 녹지 공간을 만들되,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 확충하는 방향으로 바꾼 거지. 녹지 공간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진동과 소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완충 지대라는 게 군산시 항만해양과 오근엽 주무관의 설명이야.
 
 군산시는 내년 말까지 15억~20억원을 들여 산책로와 녹지 공간 조성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래. 이 공사를 위해 갯벌을 매립하는 구간이 700m인데, 이곳에 우리 종족이 사는 거지. 군산시가 23일부터 일명 '흰발농게 포획·이주' 작업에 돌입한 전후 사정이야. 멀리 이사하냐고? 아니. 현재 우리가 사는 서식처에서 200~300m 떨어진 곳이야. '평사낙안'이라 불리는 모래톱(모래벌판)인데, 거기도 우리 종족이 바글바글 살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가냐고? 군산시에서 머리를 잘 썼더군. 우리가 사는 갯벌 곳곳에 '트랩'이라 불리는 포획 틀을 파묻고 그 안에 우리가 좋아하는 돼지비계와 바지락 속살을 넣은 거지. 한마디로 먹이를 미끼로 우리를 포획 틀로 유인해 잡는 방식이야. 그런 다음 플라스틱 컵에 한 마리씩 우리를 담아 대체 서식지로 옮기는 거지. 
 
 이게 끝이 아니야. 군산시 공무원들이 우리가 가는 갯벌에 미리 새집도 꾸며놨더라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망치로 박아 만든 '인공 서식굴'에 우리를 한 마리씩 집어넣은 뒤 바닷물을 붓고 모래로 살짝 덮어 주는 거지. 구멍을 막아 주는 건 우리가 인공 서식굴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래. 
 
 군산시는 작업 첫날 포획 틀 30개를 설치해 350마리 정도를 잡아 옮겼대. 앞으로 포획 틀을 100개까지 늘려 2주 안에 매립 예정지에 사는 우리 대부분을 옮길 거래. 예산 5000만원을 들여 늦어도 다음 달 안에는 이주 작업을 끝낸대.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사진 군산시]

 이주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고? 지난해 군산시에서 정밀 조사할 때는 4만 마리가 사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대.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 다시 조사해 보니 1만5000마리~2만 마리로 줄었나 봐. 그래도 이왕이면 '흰발농게 4만 마리 이주 대작전'이라고 불러줘. 
 
 군산시는 선유도해수욕장 안에 있는 근처 흰발농게 서식지로 옮기기 때문에 대량 폐사 같은 문제는 없을 거라고 장담하더군. 그래도 현재 서식지에 숨어 있는 유생(幼生·어린 것)들이 자라날 수 있어 꾸준히 관찰하겠대. 군산시는 관광객을 위한 기반 시설을 늘려서 좋고, 우리도 큰 피해 없이 서식지를 옮기는 거니 이만하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윈윈(win-win) 이주' 아닐까. 참, 이번 여름 휴가에 가족과 함께 군산으로 놀러와. 탁 트인 갯벌을 누비는 '주먹 대장'의 멋진 모습을 보여줄게.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본 기사는 군산시가 산책로·녹지 공간 조성 사업을 위해 선유도해수욕장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수만 마리를 포획해 인근 갯벌로 옮기는 작업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흰발농게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