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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로 코로나 퇴치" 이런 대통령 특효약은 '슬리퍼'였다

중앙일보 2020.06.24 05:00
오는 8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에서 '슬리퍼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25년 이상 장기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현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벨라루스 '슬리퍼 혁명' 조명
현 대통령 바퀴벌레에 비유, 슬리퍼 들고 나와
장기집권 염증에 무책임한 코로나 대응에 분노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1~26일)는 루카셴코 정부를 타도하려는 대선 후보들이 속속 등장하고 국민들이 여기에 열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이한 건 이들 지지자의 손에 슬리퍼가 들려있다는 것이다.     
벨라루스 시민들이 현 대통령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슬리퍼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트위터]

벨라루스 시민들이 현 대통령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슬리퍼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트위터]

 
 '슬리퍼 혁명'의 시초가 된 건 인기 유튜버이자 전직 기업인인 세르게이 티카노브스키다. 그는 현 대통령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바퀴벌레를 때려잡는 무기인 슬리퍼를 상징으로 내세웠다. 그는 거대한 슬리퍼를 차 지붕에 묶은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났다. 이 모습이 라이브 동영상으로 퍼지며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벨라루스의 한 시민이 루카셴코의 얼굴이 그려진 조형물을 슬리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트위터]

벨라루스의 한 시민이 루카셴코의 얼굴이 그려진 조형물을 슬리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트위터]

 
'슬리퍼 퍼포먼스'를 벌인 며칠 뒤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어 그의 자택에서 90만 달러(약 10억8000만원)의 돈이 발견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티카노브스키가 외국 정부와 내통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진 않았다. 정부의 탄압에 반발한 티카노브스키의 아내가 아예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벨라루스에서 '슬리퍼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시위자들이 독재자를 바퀴벌레처럼 때려잡겠다는 의미에서 슬리퍼를 들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트위터]

벨라루스에서 '슬리퍼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시위자들이 독재자를 바퀴벌레처럼 때려잡겠다는 의미에서 슬리퍼를 들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트위터]

이코노미스트는 "벨라루스 시민 수천 명이 티카노브스키 아내의 공천 서류에 서명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대선 후보 등록을 하려면 최소 10만건(※벨라루스 인구는 945만명)의 지지자 서명이 필요하다. 지지자들은 티카노브스키가 했던 것처럼 슬리퍼를 쥔 채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 주미대사, 은행가 출신 후보도 

 
국민들 사이에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커지면서 또 다른 유력 후보들도 대선 출마를 속속 선언하고 나섰다. 발레리 차프칼로 전 주미대사와 은행가 출신인 빅토르 바바리코 등이 대표적이다.   
벨라루스의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은행가 출신 빅토르 바바리코. [AFP=연합뉴스]

벨라루스의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은행가 출신 빅토르 바바리코. [AFP=연합뉴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빅토르 바바리코는 지난 18일(현지시간) 국가통제위원회에 체포됐다. 아들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러 나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이후 국가통제위원회가 체포 사실을 확인했다. 위원회는 돈세탁과 탈세 혐의가 있어 수사를 벌인 것이라 했지만 바바리코는 루카셴코 대통령에 도전장을 낸 자신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바리코는 이미 42만 건 이상의 서명을 확보한 상태였다.   
 
루카셴코가 독립적인 여론조사를 금지했기에 각 후보의 정확한 지지율을 알 순 없다. 하지만 현 대통령에 맞선 대선 후보들을 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성난 민심'을 짐작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코로나 퇴치에 "보드카 마시고 트랙터 타라"..."대통령 못 믿어" 

 
이코노미스트는 그간 루카셴코 대통령의 장기집권 비결로 포퓰리즘 정책과 정적 탄압을 병행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을 들었다. 이 전략이 맞아들어가 5번 연속 집권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민심 이반의 결정적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에서 보여준 무책임한 모습이다.   

벨라루스 대통령인 알렉산더 루카셴코가 지난달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오는 8월 대선을 치를 예정이다. [AP=연합뉴스]

벨라루스 대통령인 알렉산더 루카셴코가 지난달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오는 8월 대선을 치를 예정이다. [AP=연합뉴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4월 "코로나는 광란이자 정신병"이라면서 "보드카를 마시고, 트랙터를 운전하고, 사우나를 하는 것으로 코로나를 막으라"고 촉구했다. 프로축구 경기도 열렸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달 9일에는 열병식까지 벌였다. 
 
이코노미스트는 "벨라루스 국민은 대통령의 충고를 대부분 무시하고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벨라루스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의료진의 보호 장비와 의료용 키트를 사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모금하고 있다. 민간 기업이 여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23일 현재 확진자가 5만8505명이지만 세계 3위 확진자 발생지역인 러시아와 인접해 안심하기는 어렵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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