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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경기 나쁜데 집값은 왜 오를까?

중앙일보 2020.06.24 00:38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요즘 경제 기사를 보면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바로 부동산 기사 소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부동산 기사는 나왔다 하면 수십만 페이지뷰(PV·인터넷상에서 사용자가 기사를 본 횟수)는 보통이고 100만 PV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사실 기사 하나가 100만PV를 넘기기는 쉽지 않다. 100만명이 봤다는 얘긴데 한국인 50명 가운데 1명꼴로 해당 기사를 읽은 셈이다.
 

한두 달에 한 번꼴 부동산 대책 내놔
시장 옥죄는 정책에 불신 커 불안
문 정부 들어 서울 집값 52% 뛰어

지금 인터넷 공간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특정 언론사의 특정 분야에 대한 기사에 이렇게 사람이 몰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 분야(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게 해 준다. 더구나 코로나19, 북한 문제 등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정치·사회적 사건이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6월 17일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뒤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수요를 막고 재건축시장의 규제를 강화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한 갭투자가 어렵게 됐다. 갭투자는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샀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갭투자가 매력적인 건 돈을 적게 들이고도 고가의 집을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낼 수 있어서다.
 
서소문 포럼 6/24

서소문 포럼 6/24

문제는 투기가 목적이 아닌 실수요자도 이번 규제로 집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서민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대출을 받아 전세로 살면서 돈을 한 푼, 두 푼 모은다. 일정한 돈이 모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분양당첨을 받거나 기존 주택을 사는 방식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정부 대책으로 이런 방식으로 집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졌다. 현금이 없는 사람은 돈 빌려서 집을 사지 말라는 신호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주택 마련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졸지에 부동산 투기꾼이 됐다는 40대 가장의 호소까지 등장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최근에 북한 이슈에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경제 문제가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첫 번째 이유로 줄곧 꼽히곤 했다. 경제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밑바탕에는 부동산과 일자리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남짓한 기간에 부동산 대책을 21번이나 발표했다. 한두 달에 한 번꼴이다. 돌려 말하면 대책을 하나 내놓으면 그 효과가 한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기간 서울 집값은 52%나 뛰었다. 집값만은 확실히 잡겠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주택 구매를 미룬 무주택자는 땅을 친다.
 
지난해까지 비실대던 한국 경제는 올해 들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수출이 뚝 떨어지고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에서 밀려나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다 어렵다는데 집값은 ‘억’ 소리를 내며 고공행진을 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심해진다. 왜 이럴까.
 
많은 전문가는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지목한다. 각국 정부가 위축된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이게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 하나. 가장 손쉽게 유동성을 빨아들일 수 있는 주식시장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날 코스피지수는 2270.12였다. 하지만 이달 23일 종가는 2131.24이다. 오히려 6% 남짓 떨어졌다. ‘넘쳐나는 돈’이 증시로 흘러가 기업의 투자 여력을 높이고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는커녕 서민의 내집마련 문턱만 높이고 있다.
 
이렇게 부동산으로만 돈이 몰리고 있는 건 정책 불신과 학습효과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는 공급을 대폭 늘려서 시장에 숨통을 트이게 하지 않고 수요만 짓누르는 정책은 오래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시장에 맞서는 정책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집값 급등을 불러왔다. 정부의 으름장에도 시장이 꿈쩍 않는 이유다.
 
정권 후반기다. 남북관계, 적폐청산, 경제 등 주요 현안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정부가 모두 다 잘하기에는 시간도, 능력도, 여건도 녹록지 않다. 시장도 만능이 아니지만 정부는 더더욱 만능이 아니다. 시장을 옥죄는 게 아니라 달래며 함께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국민을 궁핍하게 해놓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은 없다. 대통령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창규 경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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