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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코로나에 숨겨진 학대 아동 찾아야

중앙일보 2020.06.24 00:18 종합 24면 지면보기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지난 11일 경남경찰청 기자실. 20여명의 기자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경찰이 백브리핑(비공식적인 브리핑) 형식으로 창녕 아홉살 소녀 A양이 부모로부터 당한 학대 내용을 설명하면서다.
 
이날 백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이 간 곳은 A양이 살던 집이었다. A양이 빌라 4층 테라스의 난간과 난간을 넘어 이웃집으로 갔다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에 간 기자들은 또 한 번 놀랐다. A양이 넘어갔다는 테라스와 테라스 사이에는 45도 기울기의 지붕이 있었다. 한 기자가 맨발로 올라갔다가 뒷걸음질로 내려왔다. “식은땀이 온몸에 흘러내리고, 바짝 긴장한 다리가 후들거려서 더는 건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른도 건너가기 힘든 저 지붕을 아이는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건너간 것인가를 생각하니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무사히 옆집으로 간 A양은 먹을 것부터 찾았다. 누룽지와 짜파게티가 들어 있는 컵라면에 차례로 물을 받았다. 젓가락을 찾지 못해 정수기 옆에 있던 티스푼으로 허겁지겁 누룽지를 먹었다. 그 사이 인기척이 들렸다. 급히 몸을 숨겼다가 집주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가던 A양의 손에는 짜파게티가 쥐어져 있었다. 이후 A양은 빌라 물탱크실에 7시간가량 숨어 있었다. 경찰이 왜 해질녘이 다 되어서 물탱크실을 나왔냐고 물어보자 “낮에는 엄마에게 붙잡힐 것 같고, 밤은 무서워서…”라고 했다.
 
창녕 아동학대 소녀가 살던 4층 빌라(오른쪽). 위성욱 기자

창녕 아동학대 소녀가 살던 4층 빌라(오른쪽). 위성욱 기자

그렇게 도망치다 한 시민에게 구조된 A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계부가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고, 친모가 달궈진 젓가락으로 발을 지진 상처였다는 것이 A양 진술이다. 쇠사슬로 목줄을 한 채 자물쇠까지 채워 테라스에 묶어두고 밥도 제때 주지 않았다는 A양의 진술은 공분을 일으켰다.
 
문제는 A양이 이토록 심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사이 사회 감시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A양이 1~3학년까지 다녔던 거제의 한 초등학교는 학대 징후를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A양은 경찰에서 “긴 옷으로 (멍 자국을) 가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창녕에 이사 온 뒤에도 담임교사가 집에까지 찾아갔으나 친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려된다며 만남을 거절해 못 만났다.
 
특히 A양은 창녕군에 위기아동으로 등록돼 있었으나 담당자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만나러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말쯤 코로나19로 가정 방문을 하지 말라는 정부 공문이 내려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자주 가지 않는 상황에서 A양 같은 학대 아동이 더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양처럼 목숨을 걸고 집에서 탈출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학대 아동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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