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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한국전·월남전 3대가 유공자” 남다른 피의 헌혈왕

중앙일보 2020.06.24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경기도 부천소방서 공병삼 소방장(왼쪽)이 헌혈 중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경기도 부천소방서 공병삼 소방장(왼쪽)이 헌혈 중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안타깝다. 나 홀로 헌혈.’ ‘코로나19로 헌혈의 집에 사람이 없습니다.’
 

공병삼 부천소방서 소방장
16년간 100회 헌혈 ‘명예장’ 받아
“3대 국가유공자 집안 전국서 유일
선대 뜻 받들어 나눔 실천이 운명”

경기도 부천소방서 소속 공병삼(46) 소방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 1월부터 헌혈을 꾸준히 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글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여파로 헌혈 참여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걸 헌혈의 집을 찾을 때마다 직접 느껴서다.
 
2004년 소방관의 길에 들어선 공 소방장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을 찾다 자연스레 헌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평균 2주에 1번꼴이었다. 이후 2007년 헌혈 은장(30회)을, 2008년에는 헌혈 금장(50회)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받았다.
 
꾸준한 헌혈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교대근무가 잦아서인지, 2008년 위궤양 등 건강 이상이 찾아왔다. 이후 7년간 공 소방장은 헌혈하지 못했다. 운동 등을 하며 건강을 회복한 2015년께부터 다시 헌혈의 집을 찾고 있다. 멈춤 없이 헌혈에 나선 그는 지난 16일 헌혈 100회를 달성해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적십자사는 100회 이상 헌혈한 자를 예우하고자 훈장과 증서인 ‘헌혈 명예장’을 수여하고 있다.
 
공 소방장의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아버지가 받은 표창장 및 국가유공자증. [사진 공병삼 소방장]

공 소방장의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아버지가 받은 표창장 및 국가유공자증. [사진 공병삼 소방장]

사실 그가 헌혈을 통한 이웃 사랑에 빠진 데엔 남다른 가족사가 있다. 공 소방장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는 모두 국가 유공자다.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공칠보(1884~1939) 의사다. 일제강점기 3·1운동을 경기도 오산시에서 주도하며 일제의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할아버지인 고(故) 공진택씨는 6·25 전쟁 참전 유공자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폭탄이 터져 시력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인 고 공남식씨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생전 고엽제 후유증을 겪었다. 공 소방장은 “3대가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은 건 전국에서 우리 집안 밖에 없다고 들었다”며 “의미 있는 일을 찾다 보니 헌혈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국가에 헌신한 선대의 뜻을 받들게 됐다는 것이다.
 
공 소방관의 선친도 소방관이었다. 공 소방장은 “제가 소방관이 된 건, 이웃사랑을 실천하다 불의의 사고로 다치고 퇴직한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나눔 실천이 운명”이라고 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닦아온 길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도 크다. “실수하거나, 마음에 죄책감이 드는 일이 생기면 헌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공 소방장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헌혈자가 줄면서 혈액 수급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걱정이 크다. 그가 헌혈의 집에 가서 보는 현실도 그랬다. 공 소방장은 “헌혈은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코로나19 이후 헌혈의 집에 갈 때마다 헌혈하는 사람이 안 보여 안타깝다”며 “관리자들이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헌혈에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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