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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장벽 높이는 시대, 거미집 같은 경제 회복력이 열쇠

중앙일보 2020.06.24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포스트코로나 대변혁이 온다 ② 새로운 경제모델

“유일한 해답은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새롭고 강력한 경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제조공장 중국서 인도 등으로 분산
맥킨지 “새시대 특징은 상황 대응력”

슈밥 “이기적 기업은 외면 받을 것
주주뿐만 아니라 소비자 챙겨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국민에게 밝힌 ‘포스트 코로나’ 경제 구상이다. 지난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1차 승리를 선언하면서다. 이미 프랑스는 한국·중국에 대항해 전기차 배터리 홀로서기에도 나섰다. 80억 유로(약 11조원)의 자금을 바탕으로다. 프랑스 공장을 폐쇄하려던 르노에는 “프랑스 땅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지원도 없다”고 윽박질렀다.
 
세계화의 시대는 가고, 성곽 경제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코로나19는 이미 세계 교역을 한 단계 주저앉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세계 교역 규모는 지난해보다 12.9% 감소할 전망이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31.9%에 이른다.
 
미국의 신생 제약회사 플로우는 지난달 미국 정부와 리쇼어링 계약을 맺었다. 백악관은 환영 성명까지 냈다. [유튜브 캡처]

미국의 신생 제약회사 플로우는 지난달 미국 정부와 리쇼어링 계약을 맺었다. 백악관은 환영 성명까지 냈다. [유튜브 캡처]

여기에 미국이 주도해온 리쇼어링(Reshoring, 본국 회귀) 물결은 거세다. 미국의 신생 제약사 플로우는 지난달 1조원(8억1200만 달러)짜리 리쇼어링 계약을 미 복지부와 맺었다. 미 복지부 계약으로는 사상 최대다. “결정적 순간이자 변곡점”이라는 백악관 성명까지 나왔다. 마켓워치는 의약품 수입(연간 1600억 달러)의 절반을 미국 내 생산으로 돌리면 8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추산한다. 플로우 계약은 미국이 새로 쌓아 올리는 ‘의약품 성곽’의 첫 번째 성벽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세계화에 대한 맹신을 비판해온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국제정치경제학)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화와 e메일로 전망을 물었다.
 
코로나19 이후 무역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이후 무역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는 어떻게 바뀌나.
“시장과 국가가 재균형을 이룰 것이다. 초세계화보다는 국가 단위의 완결성을 추구할 것이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보다 회복 탄력성과 신뢰성이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화의 종말인가.
“탈세계화는 이미 진행됐고, 코로나19로 티핑포인트(전환점)가 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기업이 경제 논리를 무시하고 신흥국에서 생산기지를 모조리 빼기는 무리다.”
 
헛갈린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세계화의 종말은 아니다. 코로나는 국가 간 의존도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세계화의 시발점이다. 경제적 이득이 없어도 방역 물품 등을 국가 단위에서 생산하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생산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평택 LG전자 러닝센터에서 협력사 직원들이 로봇 자동화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LG전자]

코로나19로 비대면 생산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평택 LG전자 러닝센터에서 협력사 직원들이 로봇 자동화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LG전자]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의 전망도 궤를 같이한다.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진화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코로나19로 확인했다. 제조공장을 중국에서 인도 등으로 분산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코로나19‘성곽 경제’의 시대 다시 불러오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성곽 경제’의 시대 다시 불러오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두 사람 모두 국가 단위의 성곽 경제가 세계화를 대체하는 수준으로 전면화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은 함께했다. 세계 교역량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어선 상황이라 완전한 리쇼어링은 초세계화만큼 현실성이 낮다. 그래서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케빈 스니더 글로벌 회장은 “오프쇼어링(Offshoring, 해외 이전)도 리쇼어링도 아닌 멀티쇼어링(Multishoring)”이라고 규정했다.
 
멀티쇼어링 시대의 키워드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다.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새 시대(Next Normal)의 특징으로 ‘상황 대응력(Just-in-Case)’을 꼽았다. 효율 지향의 적시성(Just-in-Time)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지난 2월 비어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완성차 주차장. 중국산 부품 조달이 차질을 빚으면서 일부 생산라인이 중단됐다. [연합뉴스]

지난 2월 비어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완성차 주차장. 중국산 부품 조달이 차질을 빚으면서 일부 생산라인이 중단됐다. [연합뉴스]

대응력의 차이는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링 하네스 공급 중단에 따른 한·일 자동차업계의 희비로 귀결됐다. 부품 공급을 중국에만 의존한 한국 업체는 지난 2월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일본은 공급선을 탄력적으로 바꿔 생산을 이어갔다. 2013년 수입 1위였던 중국산 비중을 4위(15.9%)로 낮추면서,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로 공급선을 다변화해온 결과다. 맥킨지의 스니더 회장은 “개별 요소 비용과 단일 공급처에 의존한 공급망 최적화를 멈추라”고 조언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책을 거미집에서 찾는다. 촘촘하게 조직화한 벌집은 효율적이지만, 입구가 막히면 집을 통째로 버려야 한다. 그러나 거미집은 충격이 온 줄만 끊으면 된다. 출렁일 순 있어도 집이 무너지진 않는다. 분산이 오히려 연결을 강화하는 아이러니다. 면세 화장품 부진을 항균 생활용품으로 메운 LG생활건강이 코로나 속에서도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비결이기도 하다. 이 전 부총리는 “분산과 재배치, 그리고 연결을 통해 밸류 체인을 장악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꺾인 수출 경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이후 꺾인 수출 경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날로 평평해지던 세계에 문턱이 다시 생기면서 국가·정부의 역할도 커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로드릭 교수는 “코로나로 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부각됐다”며 “앞으로 시장 대 국가 관계에서 국가가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편적 의료보험, 노동시장 보호 강화, 주요 의료·보건 장비 자국화 등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것에 대한 경계론도 나온다. 이 전 부총리는 “국가는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며 “네트워크 플랫폼을 짜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정보 이동과 소통이 원활해지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도 갈림길에 섰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변화다. 주주만이 아닌, 소비자·직원 등 이해관계에 놓인 모든 이들을 감안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 겸 회장은 “지갑으로 투표하는 소비자가 놀라운 속도로 늘고 있다”며 “사회에 도움을 주지 않는 이기적인 기업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밥 회장은 코로나가 근시안적 경영에 철퇴를 내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단언했다. “선택은 둘뿐이다. 죽느냐 적응하느냐(die or adapt).”
 
조현숙·배정원 기자 newear@joongang.co.kr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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