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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재료 공짜로 줄게…韓에 애원하는 中 마스크 업계

중앙일보 2020.06.23 05:00

"돈 안 받겠다. 기계도, 재료도 가져가 쓰면 된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중국과 거래를 지속해온 국내 한 수출업계 인사가 전한 말이다. 중국 업체에서 요즘 파격적 제안을 한다고 했다. 마스크 제조 기계와 재료를 통째로 넘기겠다는 거다. 그것도 공짜로. 대신 매출의 일부만 수익으로 달라고 했단다. 중국산 마스크는 수출이 안 되니 한국산 마스크를 팔아 수익이라도 나눠 가지려 하는 거다.
 
그런데도 한국 업체들은 이 제안을 선뜻 받지 않는다고 한다. 기계와 재료를 넘기겠다는 중국 업체가 한 두 곳이 아니라서다. 더 좋은 조건이 없는지 고른다는 말로 들렸다.
 

"한국 마스크, 수출되는 것 맞지?"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또 다른 수출업계 인사는 한국 마스크의 해외 인기를 전해줬다. 체코와 사우디, 미국 등에서 한국산 마스크 수입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바이어가 걱정하는 건 품질이 아니었다. 진짜 한국산 마스크 수출이 가능하냐였다. 지난 3~4월 마스크 대란 당시 한국 정부가 내린 수출 금지령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 인사는 “현재 한국에선 마스크가 부족하지 않고, 정부도 보건용 마스크 수출 허용 비율을 높였다”고 말하며 바이어를 안심시킨다고 했다. 이를 입증할 서류를 만들어 보내주느라 바쁘다고 했다.
[진르터우탸오 캡처]

[진르터우탸오 캡처]

이런 해외 바이어도 중국산에는 기겁한다고 했다. 마스크 제품 성분표까지 요구하며 혹시나 중국산 자재가 없는지 살핀다고 했다.

두 장면 모두 2~3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전 세계는 중국만 바라봤다. 코로나19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 도구인 마스크. 이를 구할 곳이 중국밖에 없었다.
 지난 4월 독일에 도착한 중국 궤도차 생산 기업 CRRC( 中國中車)의 의료물품. [신화망 캡처]

지난 4월 독일에 도착한 중국 궤도차 생산 기업 CRRC( 中國中車)의 의료물품. [신화망 캡처]

중국은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해관총서가 4월 말 발표한 통계를 보자. 3월부터 4월 25일까지 중국이 전 세계에 판 마스크가 211억 개다. 하루 동안 10억 개를 수출한 때도 있었다. 민간에선 너도나도 마스크 기계를 사들여 대박을 노렸다. 중국 정부도 ‘구호 외교’를 표방하며 선심 쓰듯 각국에 마스크를 뿌렸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시작된 건 4월 말부터다. 일단 중국 내 마스크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무차별 대량생산을 하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다. 더 이상 대량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동시에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세도 가라앉았다. 기업도, 개인도 재고가 많았다. 당연히 마진은 떨어졌다.
지난 4월 체코 브루노시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 4월 체코 브루노시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그러면 수출이라도 잘 되면 되는데 이도 여의치 않았다. 중국산 마스크에 대한 품질 논란이 각국에서 불거졌다. 통관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졌다. 산둥성의 한 마스크 공장 소유주는 중국 글로벌타임스에 “국내 수요 감소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지만, 수출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장비 거래업자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연합(EU)의 유럽통합규격인증(CE)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곡소리 나는 中 마스크 시장…“95% 이상 문 닫을 것”

[진르터우탸오 캡처]

[진르터우탸오 캡처]

과포화된 중국 마스크 업계엔 곡소리가 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몇 달 전만 해도 미국 서부 골드러시 시대처럼 업계에 마스크 붐이 일었다”며 “하지만 열기가 사라진 지금은 유령 도시처럼 황량해졌다”고 표현했다.
 
손실이라도 줄이기 위해 생산라인을 급매물로 내놓고 있지만 팔리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 업체에까지 손을 벌려 물건을 처분하려고 했던 거다. 바이위 중국의료장비협회 회장이 “하반기에 마스크 공장 95% 이상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이런 이유다.
[진르터우탸오 캡처]

[진르터우탸오 캡처]

마스크 업자 리모씨는 SCMP에 “내 친구 중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마스크 공장을 세웠다가 크게 망한 친구도 많다”며 “은행 신용대출을 받은 나는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산 불신 커…'방역 선진국' 이미지 韓 반사효과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국내 수출업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느낀 건 크게 2가지다. 우선 중국산 제품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불신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그 반사 효과를 한국이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제품이 많아도 중국산 마스크는 안 받겠다는 해외 각국. 하지만 ‘코로나 방역 선진국’ 이미지가 큰 한국 제품은 구매에 나서고 있다.
 
호기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방심은 안 된다. 당장의 열기에 편승해 대책 없이 뛰어드는 건 금물이다. 당장 쌍방울과 비비안이 일회용 마스크, BYC와 엘에프(LF)는 천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
 
국제시장에서 신뢰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우리가 중국 처지가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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