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 "북미회담, 김정은이 노동당 청사서 먼저 제안했다"

중앙일보 2020.06.23 05:00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자신의 회고록에 한반도 문제를 서술한 내용과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2일 “상당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실장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 당시 카운터 파트였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3월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 청와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3월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 청와대]

 

볼턴 회고록에서 "한국 창작품" 주장
청와대 정의용 실장 "상당부분 사실 왜곡"
당시 특사단 관계자도 부인
"김 위원장이 미국에 전해달라 말해"
"트럼프 만날 때도 볼턴은 없었다"

외교관 출신인 정 실장은 이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출간예정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THE ROOM WHERE IT HAPPENED)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ㆍ미 정상회담 진행과정을 묘사했는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윤 수석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왜곡됐는지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았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조차 부적절하다”고 했을 뿐이다. 외교활동 과정이 일방에 의해 공개된 뒤에도 진실 여부를 언급하지 않는게 일반적인 관례다. 그런만큼 이날 청와대의 반응은 관련 내용이 향후 남북 및 한ㆍ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공개 후 첫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선 이후 북한과 합의도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끝났다"라고 선언했다.[유튜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공개 후 첫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선 이후 북한과 합의도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끝났다"라고 선언했다.[유튜브]

특히 정 실장이 이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건 볼턴 전 보좌관이 “(북미 회담은)한국의 창조물이었다”(South Korea’s creation)라고 언급한 부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측이 일종의 '이중 플레이'를 했고 여기에 미국이 걸려 들어갔다는 뉘앙스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2018년 3월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2018년 3월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턴 전 보좌관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정 실장이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받아 들였다”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정 실장은 훗날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선게 아니라)자신이 먼저 김(위원장)에게 제안한 것을 사실상(all but) 인정했다”고 썼다. 이 때문에 그는 “(북·미회담은)한국의 창조물이었다. 김(위원장)이나 미국에 관한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더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정 실장은 이날 이 부분과 관련해선 구체적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 업무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볼턴 보좌관이 특사단의 김 위원장 면담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지 않느냐”며 회고록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상황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5일 특사단과 평양의 노동당 청사에서 마주앉았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과 인사를 나눈뒤 한ㆍ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말을 꺼냈다. “이번(2018년 4월) 훈련은 (이미 준비가 끝났을테니) 어쩔수 없지만 전쟁을 상정한 (한ㆍ미)연합훈련은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우리(북한)에게 핵무기는 필요없다. 왜 핵무기를 쥐고 어렵게 살겠느냐?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ㆍ미 관계개선을 전제로 향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문 대통령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첫 정상회담은 판문점에서 하자고 특사단이 설득해 그가 수용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뜻을 모은 뒤 김 위원장은 “미국하고 대화를 하겠다. 그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이에 정 실장은 서울에 귀환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이 관계자는 “당초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은 다음날(현지시간 2018년 3월 9일) 예정돼 있었다”며 “백악관에서 2+2(정 실장ㆍ서훈 국가정보원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ㆍ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회의에 이어 미 안보관련 고위 인사들과 미팅중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한국 대표단을 집무실로 불러 특사단의 방북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이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당초 목표는 북한과 미국이 실무접촉을 통해 서로 정상의 뜻을 주고 받아 확인한 뒤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을 구상했다”며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도 없이 한국 대표단을 불러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다. 한국 대표단이 이를 기자실에서 발표하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대표단은 관련 내용을 부랴부랴 청와대에 보고하고 난 뒤 백악관 기자들을 대상으로 북ㆍ미 정상회담 계획을 설명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특사가 미국에 도착하기 직전(현지시간 7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보보좌관에 지명된 건 같은달 22일(현지시간)이어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대표단의 만남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