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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볼턴 반박…회고록 진실게임

중앙일보 2020.06.23 05:00 종합 1면 지면보기
미국과 북한이 지난해 6월 30일 열렸던 판문점 정상 회동을 준비하면서 당초엔 문재인 대통령 없이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북·미 접촉에 정통한 정보 소식통은 22일 “정상 회동을 하루 앞두고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을 두 정상이 만나는 장소로 추진했으나, 한국 측의 요구로 결국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집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선을 넘어 북측 통일각으로 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양자 회동을 하려 했지만 미국 대통령 경호 문제와 함께 한국 측이 강력히 주장해 자유의집으로 장소를 옮겨 결과적으로 남·북·미 정상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일 휴전선을 넘어 남측 땅을 밟은 직후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인사를 나눈 뒤 자유의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회동을 가졌다.
 

정 실장 “회고록, 사실 크게 왜곡”
정보 소식통 “김정은·트럼프 회담
북측 통일각서 둘이 만나려 했다”
볼턴의 문 대통령 배제론과 유사

볼턴, 문 대통령 구상 조현병 비유
청와대 “ 본인이 그런 것 아니냐”
볼턴 “트럼프 지난해 일본 방문 때
문 대통령이 한국에 와달라 애걸”

이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서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동) 참석을 거절했다”고 쓴 부분과 유사하다. 회고록은 통일각 북·미 정상 회동 추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으면 적절하지 않아 보일 것이다. 김 위원장과 인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자리를 피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도 주장했다.
 
북·미가 한국을 배제한 채 정상 회동을 추진한 건 북한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직전인 지난해 6월 27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국장을 내세워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며 북·미 대화에서 빠질 것을 공개 주장했다.
 
볼턴의 회고록 안에 청와대로선 극히 민감한 주장이 대거 담기며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볼턴과 진실게임을 벌이게 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회고록은)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 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볼턴 “첫 북·미회담 정의용 제안” 당국자 “김정은 먼저 얘기”

 
볼턴 대 청와대 엇갈린 주장들

볼턴 대 청와대 엇갈린 주장들

이 같은 정 실장의 입장은 전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도 전달됐다고 윤 수석은 알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고록에 대해 “정상 간 협의 과정을 밝히지 않는다는 외교 관계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회고록의 관련 내용은) 일종의 허위사실이 될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미국 쪽에서 판단해서 조치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볼턴 전 보좌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에 대해 “조현병 같은 생각(schizophrenic idea)”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볼턴) 본인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핵심 당국자는 첫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 사실상 정의용 실장이 제안했다는 회고록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특사단과 인사를 나눈 뒤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말을 꺼냈다. “이번(2018년 4월) 훈련은 어쩔 수 없지만 전쟁을 상정한 연합훈련은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우리에게 핵무기는 필요없다. 왜 핵무기를 쥐고 어렵게 살겠느냐?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미 관계 개선을 전제로 향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문 대통령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첫 정상회담은 판문점에서 하자는 특사단의 요청을 수용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미국하고 대화하겠다. 그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주문했다.
  
볼턴 인터뷰 “북·미회담은 전략적 실수”  
 
하지만 이 같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회고록엔 예민한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한도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절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전 보좌관에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방문길에 문 대통령이 한국에도 와달라고 애걸(begging)했지만 내가 거절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본 방문길에 한국에 들르라고 문 대통령이 제안했다는 주장은 지난해 강효상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한·미 정상 간 통화록 유출’ 사건의 핵심 내용이었다. 당시 강 전 의원은 정상 통화록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지만, 청와대는 “주장 자체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회고록엔 강 전 의원 주장과 일부 유사한 내용이 담겼다.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였던 지난해 5월 7일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 통화에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실질적 논의가 거의 없었다”고 시인하며 “미국이 단순히 한국의 유엔아동기금(UNICEF)이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식량 지원을 허용하는 대신 직접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식량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이뤄지지 않았다.
 
또 회고록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1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한·일 관계 질문에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연합군사훈련을 할 수 있다”면서도 “일본 군대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국민들에게 역사를 상기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과 전쟁을 할 경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일본 자위대 병력이 한국 땅을 밟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서 싸울 수 있다”고 답했다. 단, 문 대통령은 “역사 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일본이 가끔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역사를 쟁점화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문 대통령”이라며 “내 관점에선 문 대통령은 다른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처럼 국내적으로 어려울 때 일본을 이슈화하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파장을 부른 당사자인 볼턴 전 보좌관은 21일(현지시간) 방송 인터뷰에 등장해 “트럼프는 엄청난 주목과 많은 것을 얻었지만, 미국 자체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은 전략적 실수”라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 대선 이후까지 북한과 어떤 합의도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끝났다”고 비핵화 외교의 종언도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정상 회담과 관련해 “한국이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에서 북·미 협상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건영 “사실 틀려” 김종인 “대북정책 실패”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정부의 즉흥적인 자가발전 외교가 결국 한·미 신뢰를 깨버리고, 남북관계는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처럼 파탄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은 이날 ‘북한의 대남 도발 규탄 및 북핵 폐기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며 “사실을 일일이 공개해 반박하고 싶지만, 볼턴 전 보좌관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어 참는다”고 밝혔다.
 
정용수·권호·김다영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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