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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K방역’이란 위험한 자화자찬

중앙일보 2020.06.23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포유류는 뭘까. 사자·호랑이? 답은 온순하고 둔해 보이는 하마다. 하마에게 당한 사망자는 한 해 평균 500명. 사자(100명)·코끼리(100명)·호랑이(50명)보다 훨씬 많다.
 

방역 성적, 아태 21개국 중 16위
잘못된 인식 퍼져 국민 건강 위태
희망사항만 전하면 남북관계 망쳐

희생자가 많은 건 잘못된 인식 탓도 크다. 멋모르고 다가갔다 물려 죽는 관광객들이 적잖다. 보기와는 달리 하마는 30㎝가 넘는 이빨로 단숨에 몸통을 꿰뚫는 데다 100m를 9초에 뛴다. 착각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다.
 
그간 정부는 ‘K방역’ 운운하며 한국이 코로나 차단의 모범국이라고 자화자찬해 왔다. 미국·이탈리아·프랑스 등 방역에 실패한 서양 선진국과 비교하며 우리를 우등생으로 묘사해 왔다. 과연 그런가. 주변을 보자. 한국에서 가까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21개국(북한 제외)이 속해 있다. 한·중·일과 아세안 10개국, 오세아니아 4개국에다 몽골·대만·홍콩·마카오가 포함된다.
 
여기에서 인구 대비 확진자를 세면 한국의 방역 성적은 너무나 초라하다. 21개국 중 16번째, 꼴찌에서 여섯 번째다. 22일 현재 한국의 100만 명당 확진자 수는 241명. 이보다 많은 국가는 싱가포르(7212)·브루나이(336)·호주(296)·말레이시아(270)·필리핀(267) 정도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방역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됐다”고 자랑한다. 심지어 당국은 1200억여원의 K방역 홍보 예산까지 짜놨다.
 
이런 허세가 말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전은 국민을 위험에 빠트린다. 정부와 여권은 지난 4월 총선 직전 신규 확진자가 20명 밑으로 줄자 코로나 차단에 성공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의 긴장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진 건 당연했다. 이달 초 방역 전문가들이 “전반전도 안 끝났는데 K방역을 수출하자는 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는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과는 어땠는가. 요즘 목도하듯 하루 확진자가 70명 가까이 치솟으며 제2의 대확산을 걱정하게 됐다. 외신의 눈길도 싸늘해졌다. 며칠 전 ‘바이러스의 부활이 한국의 성공담을 위협한다’는 AP 기사가 나가자 많은 해외 언론이 다투어 게재했다.
 
정부의 성급한 판단과 요란한 선전으로 멍드는 건 국민 건강뿐이 아니다. 남북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잘못된 인식을 퍼트리는 바람에 남북관계와 비핵화 문제는 벼랑 끝에 몰렸다. 정부는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마냥 끊임없이 선전해 왔다. 2018년 9월 청와대 원로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은 핵·미사일을 더 발전시키고 고도화시키는 작업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러나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의 발사 실험을 계속해 왔다. 미국이 걱정하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도 곧 이뤄질 판이다.
 
지난해 7월 김정은-트럼프 간 판문점 면담 이후 나온 문 대통령 주장도 헛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북·미가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측 간에는 공식 대화조차 끊겼다.
 
국민뿐이 아니다. 문 정권은 북측에 잘못된 정보를 입력해 협상을 망쳤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의 조언을 믿고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했다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영변만 닫으면 미국이 제재를 풀 것”이라는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 대통령부터 냉정한 현실 대신 사탕발림식 희망사항만 늘어놓다 보니 남북은 물론 북·미 관계 악화에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참사가 생긴 거다. 정부가 북한의 기만적 비핵화 주장을 꿰뚫어 보고 그 속내를 제대로 알렸더라면 170억원짜리 연락사무소가 들어섰겠는가. 정권이 달콤한 소리만 계속 늘어놓다간 미몽에서 깨어난 국민의 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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