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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윤석열이 수사대상 1호라니

중앙일보 2020.06.23 00:19 종합 25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엉뚱한 말도 계속 듣다 보면 진짜같이 들린다. 선전선동이 임계치에 달하면 진짜가 된다. 믿고 싶은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내달 출범하는 공수처 수사대상 1호가 누구냐고 물어보라. “윤석열” 석 자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현직 검찰총장이 수사대상 1호라는 프레임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법사위 소환대상 1호로 윤 총장을 지목했다. 어쩌다 이리됐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졌다”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꼭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송철호 울산시장. 두 인맥을 ‘검찰주의자’답게 수사로 넘어서려 했기 때문 아닌가. 대통령의 최측근에게 무딘 칼 대신 벼린 칼을 들이댄 업보 아니겠는가.
 

윤석열 검찰총장 발탁해놓고
내편 친다고 내치면 법치 훼손
문 대통령, 측근 수사 전권 줘야

조국·송철호 사건을 거치며 청와대와 여당은 윤석열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언제라도 내편을 칠수 있기에 ‘우리 편 속 위장침투자’로 여긴다. 이물질처럼 불편해한다. “우리 윤 총장”이라고 치켜세운 대통령의 은애(恩愛)는 짝사랑으로 끝났다. 윤석열은 취임 몇 개월 만에 시야에서 밀려났다. 내편 챙기는 건 윤 총장도 남 못지않았다. 서울중앙지검장 때 적폐수사하며 동고동락한 윤석열 사단을 검찰총장에 발탁되자 그대로 대검으로 옮겨갔다. 법무장관 묵인하에 식구들 제대로 챙겼다. 윤사단에 끼지 못한 검사들은 ‘이너써클 중심의 리더십’이라고 마뜩잖아했다. 권력의 크기와 세기로 보면 빅문(文), 리틀윤(尹)이지만 전체 통합보다 내편단합 우선은 큰 차이 없었다.
 
윤석열 흔들기와 검찰 힘빼기는 그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조국 후임 추미애 장관은 인사권을 활용해 윤석열 사단을 참치 해체하듯 해체했다. 최측근 참모들을 하방(下放)시켰다. ‘적폐수사 일등공신’ 마패의 효력도 정지시켰다. 장관과 총장 간 인사 협의 관행은 단박에 폐기했다. 법무·검찰 개혁이라는 명분과 인사 혁신이라는 외피로 포장했다. 정작 공개된 인사판은 검찰 내 요직의 호남 검사 싹쓸이, 즉 정권 지지기반 우대였다.
 
서소문 포럼 6/23

서소문 포럼 6/23

조국 사태를 거쳐 지금까지 윤석열 흔들기의 구동력은 황희석(열린민주당 최고위원)·최강욱(열린민주당 대표) 콤비에게서 나왔다. 둘은 조국의 특수관계인들이다. 조국 장관 때 법무부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에 발탁된 황희석은 조국을 조선조 개혁사상가 조광조에 비유했다가 한양조씨 종친회의 항의를 받은 전력이 있다. 며칠 전엔 “남명 조식 선생이 조국의 선조”라는 글을 올렸다가 진중권씨의 질타를 받았다. 최강욱은 조국 민정수석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발탁됐다. 조국 아들의 인턴증명서 위조 공범으로 기소되자 “검찰의 쿠데타”라고 격분했다. ‘쿠데타’는 피의자가 검찰에 대고 퍼부은 역대 최고 수위의 비난이었다. 둘은 징역형을 살고 나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10년 만에 되살려낸 공로(?)자로도 거론된다.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의 촉발자인 ‘제보자X’와도 잘 아는 사이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도 조국맨이다. 검찰총장 지근거리에서 ‘검언유착’ 사건과 한 전 총리 사건 감찰 등을 놓고 사사건건 윤 총장과 맞서며 견제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집권 정치권력이 자기 손으로 임명한 검찰총장을 못 찍어내서 안달인 장면은 모순이다. 윤 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도 똑같이 수사하라”고 당부했다가 정작 그러자 미워하는 건 내편 네편 가르는 이중잣대 아니곤 설명할 길이 없다. 김학의, n번방, 버닝썬, 계엄령 문건 등 ‘우리와 상관없는’ 사안에는 철저·신속 수사를 지시하면서 김경수, 조국, 오거돈, 윤미향 등 ‘우리 사람’의 잘못에 대해선 버릇처럼 침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법 앞에 평등을 보장하는 법치주의에도 정면 배치된다.
 
당장은 오른팔 왼팔 잘려나가는 게 아프고 서운할지 모른다. 나중에 약이 된다. 세상이 돌고 돌다 멈추면 더 큰 매를 맞아야 할 수도 있다. 공수처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요새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은 개와 고양이처럼 싸운다. 법집행기관이라고 하기조차 부끄럽다. 검찰청은 도떼기시장 분위기다. 수신제가도 못 하며 무슨 검찰 개혁 타령인가.
 
“윤 총장을 왜 못 자르겠어? 후폭풍이 두려운 거지. 이건 법치와 권력의 싸움이야. 법대로 수사하는 걸 단죄할 명분은 없지. 그러니 끄나풀들이 앞에서 동뜨고, 대통령은 뒤로 빠져 있잖아. 정도가 아냐. 과거 대통령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측근 비리, 친인척 비리 엄단하라’고 왜 말 못하나. 그게 아니면 방치, 묵인, 침묵 대신 정식으로 이별을 고하는 게 맞지. 그걸 2년 임기 지키겠다고 거부할까. 윤 총장이.”(전직 검찰총장)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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