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iew] “돈 내기 싫다” 정부 1.3조 보조에도 고용보험 가입 요지부동

중앙일보 2020.06.23 00:04 경제 2면 지면보기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급감한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첫날인 22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시민들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1인당 150만원을 받는다. [뉴시스]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급감한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첫날인 22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시민들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1인당 150만원을 받는다. [뉴시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취업자조차 가입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고용보험의 ‘전 국민’ 가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가 고용보험을 확대하기 위해 2012년부터 두루누리 사업을 시행했으나 한계가 드러났고, 대상자의 업종별 특성과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고용보험 사각 안 없어지는 이유
자영업자, 세원 노출될까 기피
특수직은 보험료 내는 주체 애매
정년 보장 공무원 필요성 못 느껴

입장 다 달라 전 국민 가입은 무리
“재원 마련 대책, 사회적 합의 우선”

22일 통계청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지낸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이 ‘경제활동인구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통계원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체 2736만명의 취업자 가운데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51.4%인 140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5년 도입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체 취업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영세업체 종사자 등 핀셋 대책 필요
 
▶법적 대상은 아니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임의 가입 대상인 ‘비임금 근로자’ 680만명(24.9%) ▶법적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아예 빠진 ‘적용 제외자’ 337만명(12.3%) ▶법적 가입대상이지만 각종 사유로 가입하지 못한 ‘미가입자’ 388만명(14.2%) 등이다.
 
취업자 절반 이상은 고용보험 사각지대

취업자 절반 이상은 고용보험 사각지대

고용보험 적용이 시급한 대상은 미가입자다. 이들 대부분은 중소·영세 사업장 종사자와 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근로자로 고용여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핀셋 대책이나 사회안전망이 더 절실하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는 2012년 두루누리사업을 도입했지만 초기 반짝 성과를 제외하면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는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자와 사업주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관련 예산은 2014년 5341억원에서 지난해 1조3170억원까지 늘었지만 전체 취업자 중 미가입자 비중은 같은 기간 15.6%에서 14.2%로 1.4%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쳤다. 호응이 낮은 이유는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일정액을 지원해주지만, 사업자가 신고한 뒤부터는 이전까지 안내던 고용보험·국민연금의 일부 보험료를 내야 한다. 더욱이 다른 4대 보험인 건강보험·산재보험은 전액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유경준 의원은 “사업주가 원하지 않는 데다, 근로자 역시 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라도 보험료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 보니 양측이 합의하에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효과 미미한 두루누리사업

효과 미미한 두루누리사업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비임금근로자’는 지금도 원하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근로자는 사업주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주는 반면, 자영업자는 온전히 혼자 보험료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본인의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돼 세금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이를 감수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는 요건 자체가 까다롭다. 1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상태에서 6개월 연속 적자, 3개월 월평균 매출액 20% 감소 등 법으로 정한 정당한 사유로 폐업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1% 정도에 불과한 배경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영업자를 위해 절반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자영업자를 의무 가입시키는 나라는 별로 없다.
 
적용 제외자는 사실상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교원·우체국 직원, 한 달에 60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와 65세 이상 고령층 근로자 등이다. 근무 특성상 고용보험의 필요성이 떨어지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들에게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것은 실효성이 낮을뿐더러, 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자영업자 의무 가입 국가 별로 없어
 
이와 별도로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녀 구분이 힘든 ‘특수고용직’까지 고려하면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자영업자로 보고 보험료 전액을 내게 하면 가입 유인이 약해진다. 그렇다고 근로자로 보고 보험료를 같이 낼 사업자를 지정하려면 사업자 측이 반발한다.
 
유 의원은 “이처럼 현재의 사각지대조차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전 국민’ 가입을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며 “결국 건강보험과 같이 예외 없는 의무가입과 함께 소득재분배 기능이 들어간 제도 설계가 필요한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라고 강조했다.
 
재원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에만 2조원 넘게 적자가 났다. 취약계층으로 가입 대상이 확대되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불가피해진다. 결국 기존 가입자의 보험료를 올리거나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데, 이는 국민 부담인 데다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 나타난 것처럼 편법으로 수당을 타내려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 밖에도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 적정 보험료, 기금의 안정성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정치적 의도로 밀어붙인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