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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인문·사회과학 출판계의 ‘뿌리깊은 나무’

중앙일보 2020.06.23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박종만

박종만

출판사 까치글방의 창립자 박종만(사진) 대표가 지병으로 지난 14일 별세했다. 75세.
 

박종만 까치글방 대표

유족들은 “병원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편안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며 “유언에 따라 가족들만 모여 장례미사를 드렸다”고 21일 뒤늦은 부음을 전했다.
 
고인이 까치글방을 연 것은 유신 독재 막바지인 1977년. 펴낸 첫 책은 차기벽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였다. 민족주의는 당시 유신에 대항하는 논리의 하나였고, 고인도 분단과 독재의 암흑시대를 극복할 돌파구로서 민족주의를 주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서를 많이 펴내 지성계를 이끌겠다는 그의 포부는 국내 저자를 넘어 세계적인 고전과 동시대 석학들의 역작 소개로 이어졌다. 에두아르 푹스의 『풍속의 역사』, 사마천의 『사기』,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스티븐 호킹의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등이 대표적이다.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번역서들은 독자에게 다양한 지적 자극을 안겨주었다. 2000년대 초 이미 500종 이상을 펴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고인은 『풍속의 역사』에 공동 번역자로도 참여했다. 까치글방을 열기에 앞서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1년 반 편집하며 출판에 입문했다. 2001년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 공로상, 200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부문을 수상했다. 2017년 5월부터 딸 후영씨가 발행인 겸 대표를 맡고, 고인은 평직원(편집위원)으로 지난해까지 오전에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생전에 베푸신 후의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당부하셨다”고 고인의 뜻을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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