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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文 면전서 미군 철수 흘리며 대놓고 방위비 압박"

중앙일보 2020.06.22 14:02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해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청사 앞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변선구 기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해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청사 앞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변선구 기자

 

볼턴 전 NSC 보좌관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서
6월 30일 트럼프, 방위비 언급하며 "미군 떠날수도"
7월 볼턴 韓·日방한 전 트럼프 한미 훈련 중단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며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압박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이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고되는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6월 30일 청와대의 소인수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이야기하다 갑자기(unexpectedly) 방위비 문제를 꺼냈다”고 전했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으로부터 매년 200억 달러를 무역에서 손해보고 있다. 관세를 높여서 380억 달러는 받아내라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문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해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런데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10억 달러 미만을 내고 있다. 우리는 매년 40억 달러를 손해보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한국은 미국의 LNG가스 최대 수입국이며, 미군 기지 비용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 측 기여분을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눈에 보이게 실망하는 듯한 몸짓과 표정”을 보이면서, “거기는 우리 땅이 아니기 때문에 토지세를 우리가 내서는 안 되고, 상황이 평화로워진다면 어쩌면 (미군은)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perhaps we would leave)”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한테 직접 방위비를 더 안 내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익(profit)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부유한 나라를 북한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할 뿐”이라고 했다고 볼턴은 적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날 북측이 판문점 회동에서 이용호 당시 외무상을 데리고 나오겠다고 통보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만 가는 것으로 정리됐다고도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어 지난해 7월 23~24일 한국을 찾은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가 있었다고 공개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019년 2월 27~28일) 이후 북측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자주 불안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한다. 볼턴은 그 증거로 트럼프가 한국과의 연합훈련을 자주 거론하면서 “우리는 '워 게임(war games)'에 10센트(약 90원)도 써 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을 꼽았다. 트럼프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있는 자리에서는 “나는 한 명의 싸이코(볼턴에 따르면 김정은)와 평화를 만들려 하고 있고, 그 훈련을 하게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2017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참여한 육군 55사단 기동대대의 훈련 장면. [연합뉴스]

2017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참여한 육군 55사단 기동대대의 훈련 장면. [연합뉴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6일 한·미 간 예정된 지휘소연습(CPX)도 취소시키라고 지시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함께 “이건 가상으로 하는 거다. 해병대가 상륙 작전을 펼치고 B-52 폭격기가 날아 다니는 그런 게 아니다”며 수차례 설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소하길 원했다고 한다. 
 
 이에 볼턴이 “간청”을 해서, “(연합 훈련 관련 결정은)내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전달한 이후에 결정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그러자”고 답했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방위비 말고 보다 합리적인, '오늘 밤 싸울 수 있는 준비태세(fight tonight) 가 필요하다’ 따위 호소는 트럼프에게 이미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적었다. 한미 연합훈련의 중요성보다, 돈 얘기로 화제를 돌려 연합훈련 취소 결정을 막았다는 얘기다.
 
 이에 볼턴은 7월 21~22일과 23~24일, 각각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일본에는 80억 달러, 한국에는 50억 달러의 방위비 분담금을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해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청사 앞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변선구 기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해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청사 앞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변선구 기자

 
 볼턴 전 보좌관은 방한 둘째날인 7월 2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러 청와대에 가기 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의 초청으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아침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가상훈련 취소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럼스 사령관 모두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해리스 대사에 대해 볼턴은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방위비)의 민감성을 알고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볼턴 전 보좌관은 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트럼프와의 대화가 이들이 살고 있는 위험한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훈련을 시시 때때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이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논리로 연결시키려 했다는 게 볼턴 전 보좌관의 기억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는 전세계 미군 주둔을 ‘집단적 방위’ 개념이 아닌, ‘그들을 우리가 지켜주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방위비를 원하는 만큼 내지 않으면 미군들을 진짜 철수시킬까봐 공포스러웠다(feared)”고 적었다. 
 
 볼턴 전 보좌관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을 덜 냈다”며 주독미군 5만 2000명을 2만 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히면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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