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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이라 불린 프리랜서… 퇴직금 소송 졌다가 파기환송

중앙일보 2020.06.22 06:00
퇴직 관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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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이라 불린 보험계리사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냈다가 2심에서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에 근로자 지위에 대한 법리 오해가 있다”며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55세에 재취업한 ‘보험계리사’ 퇴직금 소송

25년간 국내 대형 보험회사에서 일한 A(71)씨. 직장을 다니며 보험계리사 자격증을 따고 퇴직 후인 2003년, 생긴 지 3년쯤 된 보험계리회사에 들어간다. 경력을 살려 보험회사의 상품이 적정한지 검증하는 등의 업무를 맡은 것이다. 유한회사이던 이 회사의 창립 멤버가 떠나자 A씨는 그를 대신해 용역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는다. 프리랜서 보험계리사로 일을 시작한 그는 2006년에는 이 회사의 출자좌를 취득하고 회사 운영에 대한 의결에도 참여했다. 이후 A씨는출자좌를 양도하고 2015년말까지는 보험계리사로, 그 이후엔 사무총장으로 일하다 2017년 퇴직했다.
 

‘부사장님’이라 불린 A씨

퇴직 관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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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게 된 건 ‘퇴직금’ 때문이었다. 회사는 A씨가 근무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기간 중 퇴직 직전 사무총장으로 일한 2016년~2017년의 기간만 근로자로 인정해 퇴직금을 정산했다. 회사가 보기에 A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한 종속된 근로자가 아니었다. 2005년 회사 이전ㆍ확장과 함께 A씨는 ‘부사장’으로 불렸고, 회사 운영상 의결권도 행사했으니 관리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A씨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퇴직금 6577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맞섰다.
 

1심 ‘일부 인정’→2심 “근로자 아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1심은 A씨의 근무 기간 중 A씨의 근무 환경 및 지위 변화에 주목했다. 입사 땐 프리랜서였던 A씨는 회사 이전과 함께 회사로 정시 출퇴근을 했다. 매월 20일 정기적으로 일정 급여도 받았다. 급여는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지급됐고 4대 보험은 없었다. 1심은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고정 급여를 받던 이 기간은 A씨를 근로자로 보되, A씨가 출자좌를 취득했던 2006년~2010년은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1심은 3369여만원을 퇴직금으로 정산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근무 기간 중 어떤 기간도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A씨가 일한 회사는 사업 초기 4명이 출자금을 똑같이 내 만든 유한 회사인데, A씨는 이 중 한 사람의 일을 대신해 ‘부사장’으로 불렸다. 2심은 “보험계리 업무 외에도 A씨는 근태나 급여 등 회사 서무가 담당하는 일도 했다”며 A씨에게 근로자가 아닌 관리자 역할이 부여됐다고 봤다. 또 A씨는 2010년쯤 회사 사정을 이유로 월급을 전 달보다 150만원씩 깎아 받기도 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일반 근로자라면 상정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입사 초기부터 회사의 관리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은 A씨가 일부 승소했던 1심을 취소하고 A씨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호칭만 부사장, 실질은 근로자”  

A씨는 정말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었던 걸까. 대법원은 사건 기록과 원심을 일일이 대조해 “실질적으로 A씨는 관리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결론을 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아닌지는 계약의 형식이 어떤가보다 실질적인 근로를 어떻게 했는지를 따진다. 또 대법원은 “회사 임원이라도 지위나 명목은 형식적인 것이고, 매일 출근해 사용자의 감독 아래에서 일하고 보수를 받았다면 근로자”라는 판례도 언급했다. 
 
즉 A씨의 경우는 ‘부사장’으로 불리긴 했지만 결국 보험계리사의 일반적인 업무를 했을 뿐이었다. 회사 운영이나 독립적인 경영권을 갖고 있진 않았다. 근태나 급여 관리 등을 했지만, 이 일을 했다고 다른 보험계리사보다 처우를 우대받은 것도 아니었다. 대법원은 출자좌를 획득했던 것도 형식적인 점으로 판단했다. 오히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사업 소득 형식으로 급여를 준 것은 회사가 우월적인 지위에서 4대보험 적용을 피하려 한 것”이라며 A씨 사건을 파기환송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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