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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이 윤석열 거취 정하라

중앙일보 2020.06.22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76석 공룡 여당은 못 할 일이 없게 됐다. 잘 쓰면 위기 극복의 약, 못 쓰면 나라 망칠 독이 될 거대 의석이다. 그들은 먼저 개원 국회를 힘자랑의 무대로 만들어 제1 야당 원내대표를 국회 밖으로 떠돌게 하더니 이제 정부 형벌기구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흔들어 쫓아내려 하고 있다. 눈에 거슬리고 발에 차이는 것들은 다 치워버릴 모양이다. 1인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게 1당 독재다. 선거 전엔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독주를 걱정했는데 요즘은 차기 권력까지 최소 10년 천하를 거머쥔 듯한 민주당의 입법부 폭주가 위험스러운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거대 정권은 바깥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진다면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내려앉을 것이다.
 

176석 공룡 여당의 위험한 폭주
검찰총장한테 왜 사퇴 요구하나
설훈·추미애 전과자 증언만 중시

이 정권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해서 그들의 정책을 국민이 다 승인한 건 아니다. 검찰 개혁이라는 좋은 말을 ‘윤석열 쫓아내기’로 변질시킨 집권당의 노선을 유권자가 수용했다고 믿었다면 착각이다. 선거 전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불공정 범죄를 파헤치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한 것엔 국민 대다수가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10월 3일 광화문에 모인 100만 인파를 보고 대통령이 조국을 경질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엊그제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의 “추미애 법무장관하고 다투는 윤석열 총장은 물러나는 게 상책”이라고 한 발언은 민심을 잘못 읽은 것이다. 설훈이라는 정치인은 희한하다. 그는 지난해 7월 “윤석열은 돈이나 권력에 굴할 사람이 아니다. 검찰총장으로 적임자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 놓고 1년도 안 돼 사퇴하라고 한다. 일개 범부의 입에서도 그렇게 민망한 말 바꾸기는 나오기 쉽지 않다.
 
그는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을 윤 총장이 사퇴해야 할 이유로 삼았다.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둘의 갈등은 윤석열이 만든 게 아니다. 한참 나중에 법무부에 들어온 추미애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더구나 검찰총장은 헌법상 그 임명이 국무회의의 17개 심의사항 중 하나로 나열돼 있을 만큼 엄중한 자리다. 법률상 2년이라는 임기가 보장된다. 이는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의 부패와 권한 남용을 척결하라는 법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검찰총장은 정무적인 이유로 언제든지 집에 보낼 수 있는 일반 장관에 비해 더 많은 지위의 안정성이 요구된다.
 
추미애와 윤석열 갈등의 쟁점으로 떠오른 이른바 ‘한명숙 뇌물 수사 검사의 위증 교사 문제’도 참 허무한 스토리다. 한명숙 뇌물 사건은 10년 전 일어났고 5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부에서 유죄로 판결났다. 윤석열은 그 시절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던 한직 검사였다. 수사 검사한테 위증을 강요받았다며 법무부에 문제 제기한 두 사람은 각각 마약, 보이스피싱 사범형과 사기, 횡령,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22년형을 살고 있는 중범죄인이다. 죄는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련다. 하지만 복역 중인 전과자들의 번복된 증언만 듣고 현직 검사를 무슨 죄인인 양 몰아가는 법무부의 판단력도 정상은 아니다.
 
오늘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고 추미애 장관, 윤석열 총장 등이 참석하는 청와대 회의가 있다고 한다. 차제에 문 대통령이 윤석열의 거취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놓고 집권당과 정부가 자꾸 나가라고 하니 이런 모순과 혼란이 없다. 방치하면 대통령의 리더십에 흠집이 가고 국정도 흔들릴 것이다. 윤 총장한테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사정이 변경됐으니 나갔으면 한다’라든가, 당정에 ‘검찰 개혁의 충정은 알겠으나 총장을 더 이상 흔들지 말라’라고 하든가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윤석열 총장도 물러날 이유는 없지만 임명권자가 신임을 거뒀다고 공개 발언하면 버티지 않을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좀 분명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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