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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시민단체의 주먹구구 회계 관행, 정부가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2020.06.22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범찬 강원대 초빙교수, 전 주영국 공사

이범찬 강원대 초빙교수, 전 주영국 공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속을 만큼 속았다”고 절규한 뒤 성역처럼 돼 있던 시민단체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재주는 할머니가 넘고 돈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챙긴 주인·대리인 모순이 발생했다. 여기에 진영 논리가 개입되면서 주인은 토착 왜구가 되고, 대리인은 정의의 사도로 둔갑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사업 집행과 결산은 불투명한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집권당 대표까지 나서 이를 두둔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회계 부정을 고치라기보다 활동의 대의명분을 강조하면서 동문서답한다.
 

시민단체의 회계 부정 근절하려면
통합 감독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사태의 본질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회계 부정과 자금 유용 의혹이다. 국민 기부금과 정부 지원금이 투명하게 사용됐는지 확인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지원한 14억원 중 9억원이 회계에 누락되었는데도 감독권을 가진 정부 어디에서도 지적조차 하지 않았다. 안성 쉼터 구입 자금을 중계한 사회복지기금이 사업 집행 검토 후 F로 평가했으나 어떤 시정 조치도 없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장이 나도 한참 고장 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건 검찰 몫이지만 제도적 문제까지 검찰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기부금과 지원금 사용을 투명하게 하는 통합관리시스템을 거론하자 여당이 관련 입법 추진에 나섰다. 야당은 비영리 민간단체 관련 3개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기존 법을 땜질하는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분산 관리되는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과 감독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 혁신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시민단체 활동과 자금 운용에 대한 통합 관리·감독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 간부가 정부 요직에 수시 발탁되면서 감시·감독하는 공무원이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고, 부정이 있어도 못 본 체한다. 국세청은 시민단체가 제출한 회계 서류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요식적으로 공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총 1만4404개의 비영리 민간단체가 정부에 등록돼 있는데 관리·감독이 매우 허술하다. 정부는 사업관리위원회를 두고 보조금 사업을 관리하고 있으나 형식적이다. 여성가족부는 2016년부터 3년간 10억6900만원의 국고보조금을 정의연에 지원했고, 국세청 공시 자료에는 국고보조금이 ‘0원’으로 기재됐는데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4차산업 혁명 시대에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민단체를 주먹구구식으로 관리·감독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가 영국에 근무할 때, 그 나라 사회적기업과 비영리 단체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적이 있다. 시민단체 종주국인 영국의 관리·감독 모델을 벤치마킹해 통합관리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영국은 19세기 중반 자선단체 비리가 대규모로 적발되면서 1853년 규제기관을 설립했고 등록을 법제화했다.
 
1992년에는 비영리 단체의 법적 행위를 구체화하고, 비영리 단체 활동과 회계 그리고 관리·감독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자선단체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기반을 둬 세워진 자선단체 관리·감독기구인 자선 사업감독위원회는 모든 자선단체의 활동과 회계의 투명성 여부를 철저히 검토해 시정을 강제하고, 위법 사항이 있으면 사법당국에 고발 조치한다. 여기에다 정부기관으로 제3섹터청을 두고 자선단체의 사업을 지도·감독한다.
 
이제 시민단체의 회계 부정과 공금 유용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반듯한 대한민국이 설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시민단체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에 힘을 모아주길 기대한다.
 
이범찬 강원대 초빙교수, 전 주영국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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