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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선] “어게인 전국민 재난지원금” 이라니…

중앙일보 2020.06.22 00:37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회사를 27년 다니다 보니 소득이 상위 30%에는 끼는가 보다. 애초 하위 70%에게만 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했을 때, 우리 집은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엔 정치권 덕을 봤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라는 이유로 덩달아 받게 됐다.
 

청소·소독 용역비 제때 못 주고
독감백신 가격 티격태격 하면서
지원금 펑펑 뿌리는 속내는 뭘까

세 가족이라 긴급재난지원금 80만원이 나왔다. 지난달 13일이었다. 받으니 기분은 괜찮았다. 기부는 하지 않았다. 속물이라 그런지 기부하면 뭔가 손해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한번 써 보자”고 생각했다. 가족이 막국수·육개장·아이스크림·커피·빵 사 먹고, 마스크도 샀다. 제일 큰 건 늦둥이 3개월 치 학원비였다.
 
이래저래 쓰긴 좀 쓴 것 같았다. 평소보다 얼마나 더 썼을지 궁금했다. 마침 며칠 전 신용카드 명세서가 나왔길래 들여다봤다. 아니, 이게 웬일? 지원금 받기 전 달과 카드 사용 총액이 거의 같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외식·나들이 등을 자제해 줄어든 지출 그대로였다.
 
그럴 만도 했다. 지원금을 받기 전, 동네를 산보하며 맛있을 것 같은 식당 사진을 찍었다. 돈 타면 가 볼 심산이었다. 고깃집·생선구이집·부침개집·칼국수집에 피자집·샌드위치집도 있었다. 거의 다 못 갔다. 코로나19 와중에 직장생활 하면서 그렇게 자주 가족 외식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새가슴이어서 외식 말고 다른 씀씀이를 특별히 늘리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부유하진 않아도 ‘중산층’ 소리 들을 정도는 되고, 코로나19에도 월급 또박또박 받은 가구는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재난지원금 받았다고 지갑을 확 더 풀 리 없다. 경제학이 그렇게 얘기한다. 금융위기 때 지원금을 뿌렸던 미국·일본의 경험도 이구동성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서는 소비보다 빚 갚기와 저축으로 돈이 흘러 들어갔다.
 
정치권과 정부도 뻔히 알고 있었다. 소득 상위층에 지원금 주는 건 비효율이란 걸 말이다. 그래서 ‘기부 형식으로 돌려받기’라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지원금을 이렇게 돌려받는다는 건, 재정을 더 긴요하고 효율적으로 쓸 데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제 살리기” 운운하며 전 국민에게 나랏돈을 푼 건 이율배반이었다.
 
그걸 우기는 바람에 나랏돈을 3조원 넘게 더 썼다. 그러고선 돈이 없어 뒤에서 난리를 피웠다. 해외 입국자들을 임시 격리 생활시설로 실어나르던 전세버스 운송업자들이 유탄을 맞았다. 올 3월 수송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난 이달 중순에야 운송료를 받았다. 그동안 개인 운송업자들은 생활비를 벌기는커녕, 기름값·통행료까지 제 주머니 털어가며 버텨야 했다.
 
격리 시설을 소독·청소하는 용역 업체들도 한참 지나서야 대금을 정산받기 시작했다. “처음 약속한 금액을 정부가 후려친다”는 업체 주장이 보도되기도 했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의료진 일부 역시 위험수당을 제때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진풍경은 또 있다. 올가을부터 접종할 독감 백신 공급 가격을 놓고서 정부와 백신 생산업체가 티격태격하는 모양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3가 독감 백신(바이러스 3종류에 효력 있는 백신)을 4가(4종류 바이러스 예방)로 바꾸기로 했다. 이러면 생산비가 20%는 더 든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만큼 올려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백신 제조업체들은 “손해 볼 수는 없지 않으냐”며 난감해한다. 감염병 학계에선 “정부가 좀 심한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속에서 필수 접종 감염병 백신을 놓고 이런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아이러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정부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고소득층에 효과 없는 재난지원금을 수조 원씩 뿌리고선 돈이 모자라 쩔쩔매는 모습에 혀를 끌끌 차야 할까. 백신 가격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가을 접종에 대기 위해 백신 생산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은 멱에 차오르고 있다.
 
온갖 난리를 치르면서도 정치권은 ‘전 국민에게!’란 뜻을 좀체 꺾지 않는다. 벌써 2차 긴급재난지원금 얘기를 꺼내면서 다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겠단다. 한술 더 떠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주겠다는 ‘기본소득’주장까지 난무한다.
 
이건 정말 아니다. 재난지원금은 간절한 이들에게 넉넉히 주는 게 맞다. 그게 소중한 재정을 효율 만점으로 집행하는 길이다. 물론 효율 지원, 핀셋 지원을 하면 우리 집은 대상에서 빠질 터다. 좀 아쉬운 생각은 든다. 그래, 나는 속물이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2차 재난지원금을 풀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원칙은 하나다. ‘꼭 필요한 이들에게만 필요한 만큼’.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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