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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1만4500원의 ‘찐’ 행복

중앙일보 2020.06.22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후연 사회2팀 기자

이후연 사회2팀 기자

최근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서른살인 아는 사람의 친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을 나왔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 생활이나 복지, 연봉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는 사람의 친구는 그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 이유를 묻는 아는 사람에게 그 친구는 “난 진심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라고 했다 한다. 그 친구가 찾은 그 일은 ‘넷플릭스(Netflix) 시청하기’였다.
 
그 친구는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모두 행복하자며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그런데 나는 넷플릭스에 있는 콘텐츠를 볼 때 제일 행복하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넷플릭스 월정액 이용료 1만4500원을 꾸준히 낼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지금처럼 이렇게 일을 해서 큰돈을 벌 필요가 없겠구나. 그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넷플릭스에 하루가 멀다고 업데이트되는 콘텐츠를 매일 보고, 돈이 조금 모이면 가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곤 한다.
 
넷플릭스 로고

넷플릭스 로고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 ‘포기 혹은 회피’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계속 그렇게 살아” “잠깐 그렇게 쉬는 거지 뭐”…. 보통 이런 평가에는 한숨이 섞인다. “요즘 젊은 애들은 정말 조금만 어려우면 피해버리네” “너무 편하게만 커서 그래. 책임감이 없어”…. 살짝 노기가 서리기도 한다. 서른다섯살인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내 또래 중에서도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가 철저하게 선택이고, ‘자기애’와 ‘이기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아는 ‘요즘 애’들은 좀 다르다. “그런 사람 주변에 꽤 있어요.” “본인이 행복하고 남한테 폐 안 끼치면 되는 거죠.”
  
‘워라밸’을 위해 잘 다니던 기업을 그만두고 연봉은 좀 낮지만 칼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가는 친구도 있었다. 주변에서 다 하는 행정고시 대신 9급 지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울대생도 봤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진짜 본인이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 내린 결정일 것이다. 묶인 게 없고, 지향해야 할 게 확실하다.
 
나도 ‘요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 그 친구 얘기를 들었을 땐 넷플릭스에 들어가는 콘텐츠 제작도 아니고 넷플릭스 콘텐츠 시청이 삶의 본질이 되는 게 맞나 싶었는데, 그게 진심으로 찾은 그 친구의 행복이라면. ‘내가 뭔데 그 사람 삶의 선택을 평가하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그 친구는 이런 시선에 신경도 안 쓰겠지’ 싶어 부러워졌다. 퇴근해서 맥주 한 잔, 웨이브(wavve)의 무한도전 한 편에 행복해지는 나를 보며, 나도 가끔 웨이브의 월정액 이용료를 계산해보곤 한다. 근데 여기에 교통비에, 식비에, 대출 원리금에….
 
이후연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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