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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유럽도 코로나 방역 실패…세계시민 보건협력 열망 커졌다”

중앙일보 2020.06.22 00:02 종합 5면 지면보기

포스트코로나 대변혁이 온다 ① 국제질서의 대전환 

이혜정 교수

이혜정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국제 질서까지 기존의 일정·과정·시스템이 중단·단절·붕괴하는 ‘대혼란(Great Disruption)’을 초래했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중단시키는 ‘동결’, 기존의 추세를 강화하는 ‘증폭’, 관행이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이 발생하고 있다.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 ① 국제질서의 대전환
이혜정 교수의 글로벌 리더십 진단
미국은 의지부족, 중국은 능력부족
코로나 이후 지구촌 패권 미지수

대혼란은 방역을 위해 기업 활동과 올림픽, 군사훈련, 선거운동 등을 모두 중단시켰다. 동결은 생명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인했다. 유엔을 중심으로 코로나 휴전과 경제제재 중단 요구가 터져나왔다. 시민 안전을 최우선시해 군비는 감축하고 보건협력은 물론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와 국제협력을 촉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대혼란이 연출한 최대의 반전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던 서구 선진국들이 방역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19 사망자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사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12만 명 규모인 세계 최대 방역 실패국이 됐다. 트럼프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떠넘기며 국제협력을 도외시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K방역은 전 세계에서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 이후 문명 표준의 역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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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병폐와 함께 양강인 미·중이 모두 국제적 리더십을 제공하지 못하는 패권 부재(G0)의 대공위시대(interregnum) 도래를 확인해 주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부상을 바탕으로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미국의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적 제도와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다른 강대국들을 이념적·제도적으로 이끄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의지가 부족하다. 트럼프 정부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나 무역 보복, 금융 제재 등 ‘대량혼란무기(Weapons of Mass Disruption)’를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경제적 상호 의존의 오남용으로 미국의 국제 위상은 크게 실추됐다. 코로나19 이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한 미국이 오는 11월 대선 이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구촌 패권을 추구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쇠퇴하는 조직에 대한 대응을 ‘이탈·항의·충성(Exit·Voice·Loyalty)’으로 구분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제한적이지만 미국 패권에서의 이탈 옵션이 생겨났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내 우파 민중주의가 패권 이탈을 선택했음을 시사한다. 코로나19 대혼란의 ‘동결·증폭·반전’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또 미국과 전 세계 사이에 진행될 ‘이탈·항의·충성’ 게임이 포스트 코로나 국제 질서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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