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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만 하던 백건우의 앙상블…그가 '같이' 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2020.06.21 11:00
젊은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서 실내악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작가 준초이]

젊은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서 실내악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작가 준초이]

“앞으로 많이 해야지. 너무 재밌잖아요.”
피아니스트 백건우(74)가 다른 악기와 함께 하는 실내악의 무대를 늘린다. 백건우는 올해를 데뷔 64년으로 친다. 열 살에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무대에 섰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 해외에서 굵직한 무대와 작품을 소화해냈다.
 
주로 독주였다. 대형 오케스트라와 일대일로 맞붙었다. 그리그ㆍ차이콥스키ㆍ라흐마니노프 같은 스케일 굵은 협주곡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한편으로는 작곡가를 인간으로서 탐구해 들어가는 시리즈로 독주를 진행했다. 라벨, 베토벤, 쇼팽, 슈만 등 작곡가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찾아 읽은 후 자신만의 결론으로 작품을 풀어내는 독주 피아니스트였다.
 
바이올린ㆍ첼로 등 현악기나 플루트ㆍ클라리넷 등 관악기와 소규모로 연주하는 실내악 무대는 백건우에게 드물었다. 하지만 홀로 주인공이 아닌 하나의 멤버로 무대에 오르는 실내악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작가 준초이]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작가 준초이]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백건우의 이런 실험이 무대에 올랐다. 백건우는 임지영(25ㆍ바이올린), 문태국(26ㆍ첼로), 이은빈(17ㆍ비올라), 김남균(37ㆍ더블베이스)과 한 무대에 올라 슈베르트 5중주 ‘송어’를 연주했다. 객석에 청중은 없었지만 이 연주를 녹음해 추후 영상으로 송출한다. 백건우와 젊은 연주자를 한 무대에 초청한 주최는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 불국사ㆍ첨성대ㆍ하회마을 등 한국의 명소에서 연주하는 모습에 이날 연주 음원을 입혀 이달 말 방송할 예정이다.
 
백건우의 실내악 연주는 10여년 만이다. 4일 만난 그는 “10여년 전쯤 지휘자 샤를 뒤트와와 함께 한 후 국내에서 실내악 무대는 처음인 듯하다”고 했다. 또 “이상하게 실내악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학생일 때 많이 하고, 프로페셔널한 연주자 생활을 하고부터는 독주만 주로 했다. 그런데 앞으로 많이 하고 싶다.”
 
4일 후배들과의 무대에서 그가 연주한 ‘송어’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백건우와 연주자들은 속도를 느리게 잡아 서정적으로 이 곡을 연주했다. 누구나 아는 친근한 선율에 기품있고 여유로운 해석을 더했다. 오랜만의 앙상블이었지만 백건우는 실내악에서 정확한 균형을 잡고 있었다.
 
백건우의 앙상블 녹음 현장. 왼쪽부터 문태국(첼로), 임지영(바이올린), 백건우, 이은빈(비올라), 김남균(더블베이스). 김호정 기자

백건우의 앙상블 녹음 현장. 왼쪽부터 문태국(첼로), 임지영(바이올린), 백건우, 이은빈(비올라), 김남균(더블베이스). 김호정 기자

녹음을 마친 그는 “젊은 연주자들이랑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피아노 듀오 곡만 해도 마음먹고 찾아보니 100곡도 넘더라. 사람들은 독주 곡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독주랑 정말 다르니까 더 즐겁다.” 그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과 자주 무대에 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백건우의 실내악 연주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다. 이날 더블베이스를 연주한 김남균은 “사실 쉬운 곡이었는데, 대충하지 않고 굉장히 섬세하게 연습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방식에서 큰 영감을 주는 선배 연주자다”라고 말했다.  
 
백건우는 지난달 입국 후 자가격리를 하면서 피아노 있는 방에서 혼자 생활했다. 이달 예정됐던 서울 연주는 취소됐고 10월 슈만의 작품으로 독주회를 앞두고 있다. 그는 이번 자가격리 기간에 피아노 있는 집에서 혼자 지냈다. “피아노 있는 곳에서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연주 여행을 다닐 때는 호텔에서 머물며 근처 연습실을 찾아야 했고, 거주지인 프랑스 파리에서는 아파트에 피아노를 놨기 때문에 아래ㆍ위층의 눈치를 봐야 했다. “칠십 평생 처음으로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연습했다”는 그는 "피아노 옆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파워풀한 독주자로 우뚝 섰던 백건우는 이제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 때로는 조력자로, 또는 화음을 위한 연주자로 무대에 선다. “독주와 앙상블 연주는 상상 이상으로 다른 역할”이라면서도 후배들과 화음을 맞춘 그의 표정은 밝았다. “실내악은 연주하면서 다른 사람 음악을 잘 들어야 하거든요. 근데 들으면서 연주하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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