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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반갑지만 부담스런 손님맞이, 그래도 남는 게 있다

중앙일보 2020.06.21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3)

JTBC의 ‘한끼줍쇼’는 연예인이 남의 집에 불쑥 찾아가 저녁 얻어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밥 한 끼 얻어먹기가 꽤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될 것 같은데 대부분 미안해하며 거절한다. 그걸 보며 “우리집에 찾아오면 어떡하지?” 했더니 아내가 기겁한다. 내가 사는 모습이 방송에 나간다고? 아내 역시 거절할 거란다. 하긴, 아무 준비 없이 내 집을 남에게 보이려면 큰 용기나 태평한 성격이 필요하겠다.
 
요즘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시대가 아니다. 가끔 음식 장만해서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바쁘고 번거롭고 바깥에 대안도 많으니 웬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거기 비하면 우리집에는 손님이 잦은 편인데, 지방 관광지에 살다 보니 가끔 ‘놀러 오라’며 지인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JTBC ‘한끼줍쇼’는 예상치 않은 방문을 통해 다른 가정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꾸밈없이 보여주어 인기 있던 프로그램이다. 남의 집 문턱을 넘기 힘든 시대에 시청자의 욕구를 잘 파악한 것 같다. [사진 '한끼줍쇼' 캡처]

JTBC ‘한끼줍쇼’는 예상치 않은 방문을 통해 다른 가정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꾸밈없이 보여주어 인기 있던 프로그램이다. 남의 집 문턱을 넘기 힘든 시대에 시청자의 욕구를 잘 파악한 것 같다. [사진 '한끼줍쇼' 캡처]

 
처음에는 손님맞이가 꽤 부담스러웠다. 내 집 살림을 내보이는 것도 그렇고, 어느 한 쪽의 손님인데 부부가 함께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반복될수록 여유가 생기고 틀이 잡힌다. 너무 신경 써서 대접해도 손님이 불편해하니 별채의 빈방을 내주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알아서 마음 편히 지내다 가라고 한다.
 
예전에는 타지에 가면 지인 집에서 묵는 일이 잦았다. 학창시절에는 여행경비가 넉넉지 않으니 방학을 맞아 지방의 집에 내려간 친구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친구 부모님의 환대 속에 그 집에서 며칠 묵으며 친구와 주변 명소를 구경 다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 내가 그 ‘지방 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 우리집에는 가까운 친척은 물론이고 먼 일가, 시골 이웃들까지, 손님이 정말 많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비교적 일찍 상경해서 자리 잡았고, 그때만 해도 시골사람에게 서울은 ‘멀고 낯선 곳’이고 체류비용도 만만찮아 상경하면 으레 ‘인사’ 명목으로 들러 며칠씩 지내다 가곤 했다.

 
요즘은 바쁜 생활 속에서 음식 장만이나 집안 청소 등 손님맞이 준비가 부담스럽고 집 바깥에 편리한 공간이 얼마든지 있어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문화가 사라져간다. [사진 pixabay]

요즘은 바쁜 생활 속에서 음식 장만이나 집안 청소 등 손님맞이 준비가 부담스럽고 집 바깥에 편리한 공간이 얼마든지 있어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문화가 사라져간다. [사진 pixabay]

 
그러면 방을 내주고 온가족이 안방에서 비좁게 지냈고, 어머니는 고등어라도 구워내며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신경 써야 했지만 당시 인정에 비춰보면 별 문제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넘어가면 부담스러워지는데, 손님은 갈 생각도 않고 자기 볼일 다 마치고 나면 창경원이니 남산이니 하며 서울 구경 다닐 생각을 해서 방 뺏긴 상태의 형들을 긴장케 했다.
 
당시에는 남의 집 방문이 낯설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 앞세워 느닷없이 가정방문하고, 지나가던 행상도 아무 집에나 들어가 마루에 앉아 이야기하며 쉬다 가고, 친구들 집에도 무시로 몰려다녔다. 어머니는 신혼 단칸방 시절에 집으로 술친구 데려오시던 아버님 이야기를 아직도 하신다. 술 생각은 나고 주머니는 가벼우셨을 것이다.
 
그런 추억도 서서히 저물고, 이제 내 집을 개방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평균적으로 비슷비슷하게 살던 시절에서 개인별로 복잡다단하게 사는 시절이 되었으니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 제대로 치우고 살기도 힘든 공간을 공개하기 부담스럽고 어떤 식으로든 평가받는 상황이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니 내 집과 가족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건 보여주기가 특기인 연예인들의 새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일상에서 나만의 성(城)에 드나들 수 있는 건 모여 놀거나 공부하는 어린 자녀들뿐이다. 현대의 도시생활에서는 적절한 ‘거리’ 역시 중요한 질서라 남의 집 방문 자체가 결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파트 구조부터가 폐쇄적이다.
 
근대 서양소설에는 귀족들이 여행 가서 누군가의 집에서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씩 머무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특별한 일 없이 낮에는 사냥이나 산책하고, 밤이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카드놀이 하는 게 전부다. 놀 게 없던 시대에는 만남 자체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요, 사람이 가장 그립고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니 요즘 방문 문화의 종말은 내 집 내부사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매체와 오락거리에 밀려 ‘사람 만나는 재미’가 그만큼 없어졌기 때문이다.
 
집이 전주 한옥마을 부근이라 친지, 지인의 방문이 잦다. 손님을 잘 대접하겠다는 부담감보다 상황 되는대로 하자는 것이 우리의 응대원칙이다. 그래야 손님 입장에서도 마음 편하다.

집이 전주 한옥마을 부근이라 친지, 지인의 방문이 잦다. 손님을 잘 대접하겠다는 부담감보다 상황 되는대로 하자는 것이 우리의 응대원칙이다. 그래야 손님 입장에서도 마음 편하다.

 
그런데 손님을 맞으면서부터 느낀 건데, 누가 찾아온다고 해서 일정을 조정하고, 쓸고 닦고, 뭘 대접할까, 날씨는 어떨까…. 이렇게 마음과 몸을 쓰고 나면 나중에 남는 게 있다. 내 집에 한 번 다녀간 사람과는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고 친밀감이 생긴다. 카페 같은 외부의 공적 공간에서 만날 때와 다르다. 사는 방식, 철학, 문화는 제각기 달라도 삶의 때가 묻은 타인의 공간은 ‘사람의 요소’가 엇비슷함을 서로에게 확인시켜 준다.
 
남의 집을 방문하는 문화가 좋은지 어떤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어떻든 현실적으로 집에서 만날 일은 점점 줄어든다. 남들은 집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TV나 유튜브 브이로그를 통해 남의 집 안을 유심히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없고 사람을 재료로 해서 만든 영상만 있다.
 
지난봄에 지리산 아랫마을의 어느 시인댁을 방문했었다. 시인 부부와 맥주를 한잔하며 여유롭게 앉아있던 중에도 서울에서 손님이 두 팀이나 찾아왔다. 사전 약속 없이 고향처럼, 형님집처럼 불쑥 찾아온 것이었다. 항상 열려 있는 집, 집이 열려 있으니 주인 내외의 세상 또한 열려 있고 그곳으로 시가 언제나 자유롭게 드나들겠구나 싶었다. 시의 재료는 역시 ‘사람’ 아니겠는가.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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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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