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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끔은 내 안의 등불을 꺼보자

중앙일보 2020.06.21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3) 

남편이 바람났다. 그동안 남편은 사무실을 동굴 삼아 붙박여 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잦은 외박은 필수. 살다 보니 이젠 나도 면역이 생겨 그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도 내 팔자려니 했다. 저만의 공간에 파묻혀 밤낮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남편은 그새 또 다른 바람이 났다. 이제는 전원생활에 마음을 모두 빼앗긴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집은 누구처럼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도 없다. 이 지구상에 나와 남편이 노후에 내려오길 순순히 기다려주는 헛간 한 채도 없다.
 
말하자면, 땅이라고는 작은 이쑤시개 하나 꽂을 곳이 없는 게 나와 남편의 현주소다. 광고판촉물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아온 남편은 퇴직금도 없다. 덕분에 어느 날 뜻밖의 몫 돈이 생겨 논밭을 사거나 대지를 사서 집 지을 형편은 더더욱 안 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창을 따라 지방으로 사라졌다. 자주 독수공방했던 내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더니 덜컥, 누군가의 노는 땅을 무상으로 얻어서까지 농사짓고 제2의 삶을 시작하겠다고 내게 선전포고를 한다. 그것도 집에 와서 조곤조곤 말한 것이 아니라, 지방의 그 산속에서 한밤중에 화살을 날리듯 전화로 말한다. 그러더니 한밤중에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내게 보낸다. 자다 일어나 웃음이 난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창을 따라 지방으로 사라지더니 덜컥, 누군가의 노는 땅을 무상으로 얻어서 농사짓고 제2의 삶을 시작하겠다고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사진 pxhere]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창을 따라 지방으로 사라지더니 덜컥, 누군가의 노는 땅을 무상으로 얻어서 농사짓고 제2의 삶을 시작하겠다고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사진 pxhere]

 
남편이 급하게 시골 바람이 난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그 시점과 대표적 원인은 아마도 두 가지 같다. 첫째는 올 초에 덮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모임이나 개업이나 행사가 거의 없어졌고 당연히 수입은 반 토막이 났을 것이다. 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은 날이 언제던가…. 역시 나는 또 웃음이 난다. 그렇게 일감은 바닥을 쳤고, 거기에 당뇨 판정까지 받고 나서 작정한듯하다. 산촌 출신인 나야 그의 귀촌을 말릴 마음은 없지만, 갑자기 전원생활 바람이 난 남편을 오래 생각해 봤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내게 말했던 남편의 음성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다간 정말 나 스트레스로 빨리 죽을 것 같아. 두려워.”
 
그간 남편 노릇 못한다고 스스로 움츠러들었을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내심 측은하고 가엾기도 하고 이해도 되고 걱정도 앞섰다. 그 후, 나도 남편을 따라 몇 번 그 마을을 가 보았다. 남편이 마음을 뺏기고 집에 오지 않게 만든 그 마을. 마을 앞 냇가에 다슬기가 새카맣게 깔려있고 섬진강 상류가 휘돌아나가는 그 마을. 해가 지면 도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먹물처럼 어두운 그 마을. 어둠 속에서 풀벌레와 고라니와 새 소리만 고개 드는 그 마을. 나는 어느 날 하루 그곳에 내려가서야 알았다. 남편이 그토록 이곳을 동경했던 이유를.
 
모든 생명은 태양도 필요하지만 어둠도 반드시 필요하다. 가족과 인생의 목표량과 생산량에 치이며 숨 가쁜 삶을 살다 보면, 태양의 소중함은 알아도 어둠의 소중함은 종종 잊고 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밤을 새우며 일하는 일이 흔하다. 어둠이 오면 모든 생명들은 잠을 자고 쉬어야 한다. 예전에 도심 가로등 아래에 심은 벼가 자라지 못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등불 때문에 곡식들이 잠을 못 자서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한다고, 밭이 있는 도로에서는 밤이면 가로등을 소등한다는 내용이었다.
 
식물들도 밤에는 불을 꺼야 쉴 수 있다. 그렇게 쉬어야 바닥난 에너지를 모으고 다시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인간의 도시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삼교대에 야근에 회식에 비상근무에, 일이 많으면 많아서, 일이 없으면 없어도 불안해 잠을 못 잔다. 마치 컨베이어벨트에 얹힌 생명 없는 소모품처럼 혹독한 문명은 인간을 사용하고 버리고 갈아치우기를 반복한다.
 
모든 생물에게 태양만큼의 소중한 어둠이 필요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밤에는 쉬어야 한다. 잠을 자야 노동의 피로가 회복된다. [사진 pixabay]

모든 생물에게 태양만큼의 소중한 어둠이 필요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밤에는 쉬어야 한다. 잠을 자야 노동의 피로가 회복된다. [사진 pixabay]

 
내 남편도 평생 그 속에서 소모될 대로 소모된 듯하다. (물론 이것은 직장 여성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남편은 평생 끊임없이 회전하는 생산 벨트 위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깎이고 소모되면서 한생이 뭉텅 잘려나갔을 것이다. 어느 날 건강은 나빠지고 나이는 자꾸 들고 이제 남은 한 줌의 생은 더 이상 뺏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망설임 끝에 경쟁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눈 감고 뛰어내렸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그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모든 생물에게 태양만큼의 소중한 어둠이 필요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밤에는 쉬어야 한다. 잠을 자야 노동의 피로가 회복된다.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쉬지 못한다. 이제 우리 모두 용기를 내보자.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을 만들자. 마음의 채도를 낮추자. 뜨겁게 달궈진 마음에 잠시 불을 꺼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식물도 쉬고 바람도 쉬어간다. 낮 동안 쉼 없이 가동했던 육체와 마음의 대문을 잠시라도 닫아보자. 꽃들도 끝없이 흔들리다 종종 멈출 때가 있다. 꽃과 나무도 그때 숨을 쉬고 지친 종아리를 주무르는 것이 아닐까? 쉬지 않고 밤을 밝히는 등대도 쉬어가고 섬도 쉬어간다. 끝없이 흐르는 물도 풀잎과 바위에 기대어 잠시 쉬었다 흐르듯, 우리는 잠시라도 쉬어야 한다. 등불을 꺼야 한다. 부품처럼 깎이고 허물어지고 붉게 달궈진 생을 어둠 속에서 잠시라도 눈을 감고 식혀야 한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가듯, 쉬는 날엔 철저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내 속의 불을 꺼보자. 생각의 등불도 끄고 몸과 마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하루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평생 못했던 나도 이런 하루를 꼭 만들어보려 한다.
 
남편은, 갑자기 내린 자신의 결정이 아내인 내게 많이 미안했던지 ‘몇 년 후엔, 마당에 당신이 좋아하는 작은 연못을 꼭 만들어줄게’ 라고 나를 유혹한다. 이쯤 되면 나는 져줘야 맞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번 생에서 남편 아닌 새로운 남자와 뜨거워져 보긴 틀렸다. 망했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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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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