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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또는 협력' 북극에서 펼쳐질 미·중·러 삼국시대

중앙일보 2020.06.21 05:00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승리50주년 기념호가 북극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승리50주년 기념호가 북극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1회(최종). 북극에서 펼쳐지는 뉴노멀, 삼국시대 

 
북극에서 맞이했던 잊지 못할 기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의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에 올라 미국과 러시아의 경계이면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나누는 베링해협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잔뜩 화가 난 메갈로돈과 같은 느낌이 드는 ‘승리 50주년 기념호’라는 이름의 거대한 쇄빙선은 171MW 원자로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로 베링해의 마지막 섬 다이오메드를 지나 거침없이 북극의 바다, 축치해로 들어섰다. 이 러시아 쇄빙선을 타고 대한민국이 건조한 원유 운반선과 나란히 북극바다를 항행하던 시간과 그 옆을 유유하게 헤엄치는 혹등고래와의 조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둘째는 캐나다 누나벗 준주의 캠브리지베이라는 마을에서 만난 어린 원주민 여학생이 여린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속마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지금 서 있는 이유가 자신의 선조들이 그 거친 북극 기후와 생존투쟁을 하면서 자연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온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화려하고 풍요로운 대도시 생활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숨기지 못하고 대도시에서 우리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북극의 기후에 적응한 강한 신체와 지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현실, 그리고 보일 듯 말듯 흐릿한 미래의 희망은 그들 사회를 서서히 멈추게 하고 있었다.

 
그린란드의 일루리삿 빙하. 북극에선 약 500만년 전, 남극에선 약 4000만년 전에 빙하가 처음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구에선 275만년 전부터 빙하기와 간빙기 간의 주기적 변동이 나타났다. 최정동 기자

그린란드의 일루리삿 빙하. 북극에선 약 500만년 전, 남극에선 약 4000만년 전에 빙하가 처음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구에선 275만년 전부터 빙하기와 간빙기 간의 주기적 변동이 나타났다. 최정동 기자

일루리삿 앞바다의 빙산과 달라진 환경 

 
셋째는 빙산이라는 뜻을 가진 그린란드의 도시, 일루리삿의 짙푸른 북극 바닷속으로 하릴없이 부서져 녹아 들어가는 거대한 빙산의 모습이었다. 얼음으로 인해 고립되기도 하지만, 차가운 얼음에 특화된 생존방식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이름 그대로 ‘얼음에 종속된 사회’가 얼음이 줄어들면서 변해가는 모습은 마치 물이 조금씩 새고 있는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들은 단 한세대 만에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루리삿 앞바다에 떠 있는 어선에 부딪히는 빙산의 파편이 줄어들수록 그들의 삶은 반대로 점차 부서져 갈 것만 같았다.  
 
최근 북극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가 심상치 않다.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몰락 이후 환경보호를 매개로 형성된 서구 중심의 다자간 북극 협력체계는 최근 러시아의 신 북극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북극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북극에 대한 관심, 특히 안보전략적 대응이 크게 강화되면서 변하고 있다. 지난해 북극이사회를 계기로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표면화되면서 시작된 삼국 간의 북극 경쟁은 얼마 전 ‘극지에서의 미국 이익 수호를 위한 각서(Memorandum)’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3월 동시 명명한 '쇄빙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4척. 니콜라이 예브게노프(러시아 북극탐험가), 블라디미르 보로닌(러시아 첫 북극항로 운항 쇄빙선 선장), 기요르기 우샤코프(러시아 북극탐험가), 야코프 가?(북극 수심지도 최초 작성자) 등 4명의 러시아 북극 탐험가 및 학자 이름이 붙었다. 쇄빙 능력을 갖춘 LNG선은 대우조선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선박이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4년 러시아 야말지역에서 생산한 LNG를 수출하기 위해 계획된 '야말 LNG 프로젝트'를 위해 발주된 쇄빙LNG선 15척(48억 달러, 한화 약 5조원)을 모두 수주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3월 동시 명명한 '쇄빙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4척. 니콜라이 예브게노프(러시아 북극탐험가), 블라디미르 보로닌(러시아 첫 북극항로 운항 쇄빙선 선장), 기요르기 우샤코프(러시아 북극탐험가), 야코프 가?(북극 수심지도 최초 작성자) 등 4명의 러시아 북극 탐험가 및 학자 이름이 붙었다. 쇄빙 능력을 갖춘 LNG선은 대우조선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선박이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4년 러시아 야말지역에서 생산한 LNG를 수출하기 위해 계획된 '야말 LNG 프로젝트'를 위해 발주된 쇄빙LNG선 15척(48억 달러, 한화 약 5조원)을 모두 수주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앞으로 보게 될 북극의 새로운 삼국시대.

 
이 각서의 내용에는 2029년까지 무려 총 26억 달러가 드는 해안경비대 쇄빙선단의 구축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쇄빙선과 연계한 기지를 국내 2곳과 해외 2곳에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해외기지 후보지로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캐나다 북부를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응은 러시아의 북극 활동에 대처하고 중국의 북극 진출을 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조치로 이해된다.
 
러시아는 쇄빙선단을 더욱 강화하고 막대한 북극 에너지자원과 북극항로 기회를 활용한 경제협력 아젠다를 주도하고 있고, 최근에는 수소에너지 기반의 북극 소도시 개발모델을 통해 북극 영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또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과 자국의 에너지 수요를 토대로 러시아 북극 가스개발 투자의 가장 큰 손으로 자리매김한 이후, 러시아 북극항만에 대한 투자와 세계에서 두번째로 원자력 쇄빙선 건조까지 검토하면서 ‘북극몽’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런 북극의 모습은 지난 30년간의 북극권 국가 간의 다자협력시대와 에너지자원을 손에 든 러시아 독주시대를 지나 중국과 미국이 본격적인 색깔을 드러내면서 3개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삼국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서막이 될 것이다. 아직은 이들 국가가 써 내려 갈 북극 삼국지가 어떤 결말을 맺을 지는예단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예상처럼 북극이 군사안보가 중심이 되는 미중러 간의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다시 빠져들지, 아니면 지구촌 숙제인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혁신적인 협력의 틀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글로벌 경제성장을 주도할 제2의 중동과 수에즈운하가 될지, 또 누가 새로운 네번째로 들어가 또 다른 사국시대를 열지, 그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분명한 것은 북극이 필요로 하는 경제 기술 역량을 가진 국가라야 미중러 삼국이 만들어 가는 틀을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지역인 야말반도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구축된 사베타항에서 러시아 정부 초청 국제회의가 열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지역인 야말반도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구축된 사베타항에서 러시아 정부 초청 국제회의가 열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세묜 그리고레프 박사를 기리며

 
북극해의 경제 붐을 주도하는 원자력 쇄빙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갈등하던 어린 원주민 여학생, 기후변화로 인해 얼음 없는 얼음마을로 변해가는 아름다운 북극 마을 일루리삿. 아직도 무엇이 진정한 북극의 모습인지, 무엇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인지, 무엇을 지킬 수 있을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들 모두가 북극의 실제 모습이고, 각각 대체하기 어려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초강대국들에 의해 최근 격동적으로 변해가는 북극의 정치경제 환경이 이들은 어떻게 변화시킬지의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9개월 동안북극 비사를 통해 나누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변화하는 북극의 다양한 삶과 가치였는데 조금이라도 독자들께 전달되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달여 년 전갑작스러운 부고를 전해주고 홀연히 떠난 러시아 친구, 세계 최고의 매머드 연구자인 세묜 그리고레프 박사, 그의 명복을 빈다.
 

끝.

배너_김종덕의 북극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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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