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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꼰대인턴’에서 이태리 역을 맡은 한지은. 마트에서 핫쭈꾸면 시식을 권하고 있다. [사진 MBC]

드라마 ‘꼰대인턴’에서 이태리 역을 맡은 한지은. 마트에서 핫쭈꾸면 시식을 권하고 있다. [사진 MBC]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온몸으로 전형성을 거부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식품업체를 배경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렇게 사고뭉치만을 모아놓은 적은 없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어느 팀이나 또라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지만 준수식품 마케팅영업팀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옹골식품 인턴 시절 맛본 쓰라린 실패를 발판 삼아 5년 만에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가열찬(박해진)에게는 당시 부장으로 모셨던 옹골찬 꼰대 이만식(김응수)이 눈엣가시겠지만,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내쳐지고 경쟁사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만식 입장에서도 가 부장이 폭탄이기는 매한가지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식품회사 먹깨비 인턴 이태리 역의 한지은
코믹랩, 분노먹방 등 여주인공 전형성 탈피
데뷔 9년만에 다시 주연 맡은 ‘멜로가 체질’
PPL 달인, B급 정서 코미디 완벽하게 소화

그중에서도 가장 골때리는 것은 배우 한지은(30)이 맡은 이태리 역. 핑크빛 투톤 헤어로 인턴으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사무실에서는 파란색 사탕을 달고 살고 총천연색 옷을 즐겨 입으며 성격은 더욱 다채롭다. 그가 매운 불닭 맛에 빠져 눈물 콧물 다 빼고 불을 뿜으면서도 “덤벼라 세상아 싸우자 불닭아”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은 가 부장이 ‘핫닭면’을 만들었을 정도. 신제품 개발을 위해 사흘 밤낮을 매운 라면을 쏟아붓던 팀원들이 위통을 호소하며 항복할 때도 그는 가 부장과 함께 전의를 불태웠다. 매운맛이 없으면 되레 허전해 하는 그가 분홍색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모습을 보고 ‘핫쭈꾸면’이 탄생했으니 가히 ‘라면 뮤즈’라 할만하다.  
 
극 중 유행에 민감한 먹깨비로 나오는 덕에 유난히 먹는 장면이 많다. [사진 MBC]

극 중 유행에 민감한 먹깨비로 나오는 덕에 유난히 먹는 장면이 많다. [사진 MBC]

핫쭈꾸면의 모티브가 된 모습. 분홍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모습이 쭈꾸미를 연상케 한다. [사진 MBC]

핫쭈꾸면의 모티브가 된 모습. 분홍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모습이 쭈꾸미를 연상케 한다. [사진 MBC]

명색이 여주인공답게 등장하는 남성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지만, 그 역시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회사 로비에서 회장님(고인범)에게 얻어맞고 있는 사장님(박기웅)을 구해낸다거나, 라면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컴플레인하는 진상 고객(장성규)을 찾아가 보면 전 남친인 식이다. 한때 흠모했던 가 부장이 고백했을 때도 그는 “너무 꼰대 같다”며 거절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무능력하다며 악담을 퍼붓고, 당당하게 소신을 지키는 듯하다가도 결국 다른 꼰대들과 똑같아지는 모습에 실망했다는 것. “왜 나한텐 자꾸 똥파리 같은 것들만 꼬이냐”며 한탄하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적재적소에 튀어나오는 사이다 발언에 다시금 웃음 짓게 된다.  
 
이 같은 반전매력은 B급을 지향하는 드라마 정서와 맞아 떨어져 빛을 발한다. 영화 ‘타짜’(2006) 속 대사 “묻고 더블로 가”라는 유행어와 각종 패러디로 전성기를 맞은 김응수가 ‘꼰대’로서 극을 이끌어간다면, ‘인턴’으로서 정체성이 가장 강한 한지은은 새로운 밈(meme)의 창시자가 되어 극을 밀고 나간다. 극 중 아빠와 딸이 한 팀에서 인턴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은퇴한 장년층과 사회초년생이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슬픈 현실에 기반을 뒀지만, 이마저도 웃음 코드로 승화시킨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준 ‘녹취록 의인’에게 감사하다며 고기를 사겠다던 꼰대 이만식이 밥 먹다 말고 가위로 이태리의 투톤 헤어를 댕강 잘라버릴 때까지만 해도 누가 두 사람을 부녀지간으로 생각했겠는가. 이후 남몰래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한 ‘어르신’을 돕고 있던 그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괜스레 울컥하게 된다.  
 
‘멜로가 체질’에서 드라마제작사 마케팅 PD로 나온 한지은이 안마의자를 체험하는 모습. [사진 JTBC]

‘멜로가 체질’에서 드라마제작사 마케팅 PD로 나온 한지은이 안마의자를 체험하는 모습. [사진 JTBC]

극 중 ’오빠 하면서 애교 좀 부려달라“는 감독의 요구에 무서운 애교를 시전한 모습. [유튜브 캡처]

극 중 ’오빠 하면서 애교 좀 부려달라“는 감독의 요구에 무서운 애교를 시전한 모습. [유튜브 캡처]

이 모든 것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한지은은 ‘PPL의 달인’이기도 하다. 전작 ‘멜로가 체질’(2019)에서 드라마제작사 마케팅 PD 황한주 역을 맡았던 그는 당시 체득한 각종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상사 점심 심부름을 위해 김치볶음밥ㆍ순댓국ㆍ도시락집을 오가며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마트에서 외면받은 시식용 핫쭈꾸면을 연거푸 들이키는 모습은 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해당 제품을 각인시킨다. ‘멜로가 체질’에서 안마의자 상상신으로 PPL의 신기원을 열었던 그이기에 “이번엔 라면에 꽁치를 넣어봤어” “이번엔 라면에 돼지비계 넣어봤어” 깍두기ㆍ미꾸라지ㆍ번데기 등 온갖 이색 재료를 동원한 랩을 선보여도 놀랍지 않다. 실제 마케팅 트렌드가 반영된 에피소드로 구성하되 그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준 덕분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똘끼충만한 신인처럼 보이지만 그는 2010년 영화 ‘귀’로 데뷔한 11년차 배우다. 주연으로 시작했지만 이 길이 맞나 싶어 일반 회사에 지원해 입사 시험을 보기도 했고, 스피치 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 캐릭터 걸그룹 하트래빗걸스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해보지 않고 그만뒀다는 미련이 생기고 연기에 대한 갈증도 더 커졌다”고 밝혔다. 그렇게 3년을 헤맨 끝에 돌아와 단역, 조연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42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류한 영화 ‘리얼’(2017)에서 편집의 희생양이 되고,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2017) 공개 오디션에서 최종 3인까지 올랐지만 끝내 고배를 마시는 등 운이 따르진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번 멈춰섰던 그이기에 누구보다 간절했던 것이다.
 
‘리얼’의 한지은. 42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류했으나 대부분 편집됐다.[사진 CJ엔터테인먼트]

‘리얼’의 한지은. 42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류했으나 대부분 편집됐다.[사진 CJ엔터테인먼트]

어찌 보면 그 인고의 시간이 지금의 ‘단짠 매력’을 빚어냈을는지도 모른다. 9년 만에 다시 주연을 맡게 된 ‘멜로가 체질’은 시청률은 1.8%에 그쳤지만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해냈다. 이병헌 감독의 전작인 영화 ‘극한직업’(2019)처럼 1600만 관객이 본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천우희ㆍ전여빈ㆍ한지은 등 믿음직한 여배우 3명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다를지언정 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백일의 낭군님’(2018)의 남성우 PD와 2년 만에 ‘꼰대인턴’으로 다시 만난 소감도 남다를 테다. 차기작에서 코미디가 아닌 또 다른 결의 반전매력을 보여준다면 앞으로는 탄탄대로 아닐까. “앞으로 10년은 더 단단해지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응원하며 “잘 버텨온 지난 10년”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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