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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세력 낙인, 죽음뿐인데” 7년 난민심사 결론 ‘불법인생’

중앙일보 2020.06.20 06:00
한 난민 신청인이 10일 서울 목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심사를 받고 있다. 심사 전 과정은 동영상 촬영이 된다. 김성룡 기자

한 난민 신청인이 10일 서울 목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심사를 받고 있다. 심사 전 과정은 동영상 촬영이 된다. 김성룡 기자

 
“아이들은 한국말밖에 못 해요. 이 땅을 벗어나면 기다리는 건 죽음입니다.”

몰려오는 난민, 준비 안된 한국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17년 째 우리나라에서 난민 불인정자로 살아가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여성 나디아(가명ㆍ42)의 얘기다. 그는 2003년 콩고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왔다. 당시 콩고는 정부와 반군간의 내전으로 나라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지난 14일 경기도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콩고서 대학 나왔지만, 순식간에 삶 망가져

나디아 가족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남편(49)도 해외를 오가며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남편이 반정부 세력으로 몰리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남편이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찍은 몇 장의 군 관련 사진이 증거가 됐다.  
 
 이후 삶은 지옥이었다. 체포돼 고문을 받던 남편은 뇌물을 건네고 간신히 도망쳤다. 군은 남편을 찾겠다며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위협했다. 친인척의 도움으로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도피했고, 나디아도 1년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부는 2004년 법무부에 정식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

 
 로힝야의 한 난민촌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로힝야의 한 난민촌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한국 사랑하지만 난민 심사 7년은 너무해"

하지만 결과는 불인정이었다.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었다. 이후 기나긴 다툼이 시작됐다. 법원에 행정 소송을 내 1심은 승소했지만 2,3심은 이를 뒤집었다. 남편이 정부를 비방한 혐의로 콩고 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는 판결문을 지인을 통해 구해 제출했지만 법원은 입수 경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문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약 7년 간의 심사 절차 끝에 남은 건 ‘불법 체류자’ 신분 뿐이다. 그 사이 두 아이도 태어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됐지만 부부는 신분 때문에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없다. 임시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다. 나디아는 “20~30대를 보낸 한국은 이미 내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평범한 한국인으로 정상적으로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나디아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국 사회를 비난하는 건 아니다. 다만 국내 난민 심사 제도에 대해선 개선점을 지적한다. 그는 “난민 심사가 길고 복잡한 반면 체계적으로 난민을 선별하지 못한다”며 “난민이 모든 걸 혼자서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긴 심사 동안 인터뷰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었다고 한다. 영국과 그리스로 흩어진 다른 친척들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전국에 난민 심사관 93명 뿐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난민 정책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지난해에만 난민 신청이 1만 5000건을 넘겼는데, 현재 난민 심사 인력은 국내에 93명 뿐이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우리 청의 경우 25명의 심사관이 하루에 50여건의 면접을 진행하면 나오는 보고서 분량만 2000페이지가 넘는다”며 “속된 말로 눈이 빠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심급별 난민소송 접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심급별 난민소송 접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난민 소송 관련 인력은 더욱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1~3심을 합해 5100여건의 난민 인정 소송이 제기됐다. 송무 담당 직원들이 난민 재판에 출석하고 의견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경우 6명의 직원들이 이를 도맡아서 한다. 이 중 4명은 공익법무관이다.

 
법무부가 눈여겨보는 건 COI(Country of Origin Informationㆍ국가정황정보) 시스템이다. 일종의 ‘정보 컨트롤타워’로 난민신청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인권상황을 모아 관리하는 조직이다. 나디아처럼 급박하게 피난하느라 난민 증거 자료를 모아놓지 못한 이들의 경우 국가가 COI 정보를 토대로 난민 진술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노르웨이, 핀란드, 뉴질랜드 등에서 운영 중이다.

 
국가정황정보 전담 조직 사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가정황정보 전담 조직 사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난민이 난민 증명' 시스템, 고쳐야

난민전문통역사도 필요하다. 현재 난민신청서는 모두 영어로 접수한다. 제3국 언어의 경우 통역 가능자를 구해 3자통역 형태로 난민 면접을 진행하다보니 심사가 길어진다. 최근 아프리카 부족 희귀 언어인 ‘크란어’를 사용하는 난민 신청자가 있었는데, 통역 문제로 3달이 넘도록 면접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도 법무부 난민과장은 “난민 문제에 있어서 극단은 없다. 무차별적으로 받아줄 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난민을 받을지 말지를 놓고 소모적 논쟁을 하는 것보다는 난민을 효율적으로 걸러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사라ㆍ강광우 기자 park.sara@joongang.co.kr
난민의 정의와 인정 절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난민의 정의와 인정 절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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