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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소원수리함이 된 靑청원···"사건 줄었는데 기강해이 오해 사"

중앙일보 2020.06.20 05:00
최근 나이스그룹 최모 전 부회장 아들 A 병사의 ‘황제 군생활’ 이슈를 접한 군 관계자들은 새로 떠오른 돌발변수에 당혹스런 표정이다. 넓어진 언로에 리스크 관리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에서다. 각종 제보와 공개 청원으로 군 내 사건·사고가 외부로 끊이지 않고 알려지고 있어 병영 문화가 개선되고 있다는 군의 자평이 무색해졌다.
 

인터넷 게시판, 언론 제보 등 언로 다양화
병사 휴대전화 사용도 영향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군 부대 비위 관련 글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군 부대 비위 관련 글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실제 A 병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발단이 됐다. 여기엔 ▶1인 생활관 사용 ▶세탁물과 생수 등 부사관 심부름 ▶무단 외출 ▶초과 정원 배치 등 각종 의혹이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다.  
 
해당 게시글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이를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군의 소원수리함 역할을 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3일 자신을 경기 화성시 남양읍 모 공군부대 복무 중이라고 밝힌 한 군인은 이곳에 “‘황제 병사’로 문제되고 있는 부대에서 비위를 추가적으로 폭로한다. 대대장이 각종 갑질과 음주운전 은폐 등을 저질렀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6일에도 한 육군 일병이 청원 게시판에서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여단장이 나타나 '패잔병이냐'며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이들 사안 모두 사회적 관심이 쏠려 사안의 경중과 관계없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6일 한 육군 일병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단장의 폭언을 증언하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지난 16일 한 육군 일병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단장의 폭언을 증언하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의혹제기와 언론 보도 후에는 언제나 군의 기강해이가 도마에 오른다. 요즘 들어 부쩍 느슨해진 군 기강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이 같은 지적에 군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무엇보다 군 당국은 최근 불거진 각종 사건·사고를 기강해이와 연결지어 보는 시각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군 당국은 관련 통계 수치를 늘 들고 나온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의 징계 건수는 2015년 6만3207건, 2016년 5만8586건, 2017년 5만3760건, 2018년 5만2221건, 2019년 4만2038건으로 꾸준히 감소세다. 하극상 사건인 대상관 관련 징계 역시 2015년 1731건, 2016년 1544건, 2017년 1794건, 2018년 1518건, 2019년 1181건으로 줄고 있다. “소수 인원의 일탈 행위가 우리 군 전체의 기강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지난 15일 발언 역시 해당 수치를 참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일부 일탈 행위가 부각되면서 사건·사고가 많아진 것처럼 착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예전엔 내부적으로 처리되던 군기문란 사건이 외부에 쉽게 알려지고 있다”며 “시대가 변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변화된 시대상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물론 각종 언론 제보, 인터넷 커뮤니티 등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디지털 통로가 늘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부조리를 폭로하는 요즘 장병들은 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려 여론을 환기하고, 언론사에 익명의 투서를 보내 취재를 유도하는 방식을 병행하기도 한다. 군이 더 이상 고립된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해 4월 실시된 ‘병사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는 평가다.
 
현역 대대장의 비위를 제보하는 메일. [독자 제공]

현역 대대장의 비위를 제보하는 메일. [독자 제공]

 
엄벌 기조가 자리잡고 있는 현상 역시 언로의 ‘감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징계를 넘어 형사사건으로 번진 군 내 사건은 2015년 8039건에서 2019년 8800건으로 나타났다. 대상관 관련 형사사건도 같은 기간 94건에서 236건으로 늘었다. 국방부는 신고 의무 등 신고체계를 활성화하고, 엄중 대응 기조를 세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군 내 일탈 수위가 실제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지난 3월 육군 직할부대에서 일부 부사관들이 술에 취한 채 상관인 남성 장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형사 입건되는 일이 벌어졌고, 4월에는 경기도 육군 부대에선 병사가 여군 상관에게 야전삽을 휘둘러 구속되기도 했다. 군 당국자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초유의 사건들이었다”며 “과거에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을 수 있을 사안들이 잇따라 공개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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