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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인민 호날두’ 안병준 선수에게

중앙선데이 2020.06.20 00:28 691호 30면 지면보기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안병준(30) 선수, 반갑습니다. 요즘 프로축구 K리그2에서 활약이 눈부시더군요. 6경기에서 6골을 넣어 득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고, 소속팀 수원 FC도 안 선수 덕에 많은 골을 넣고 화끈한 경기를 펼친다는 칭찬이 자자합니다.
 

북한 국적 공격수, K리그2 득점 선두
편견·선입견·차별 이기고 우뚝 서길

지난 13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2 경기에서 안 선수가 뛰는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이날 골을 넣지 못했지만 안 선수는 역시 돋보였습니다. 저돌적인 돌파와 몸싸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 수비진을 괴롭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 골키퍼 오승훈의 ‘미친 선방’ 때문에 0-1로 졌지만 경기는 수원이 압도했지요.
 
안 선수의 별명이 ‘인민 호날두’라지요. 아마 5월 9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무회전 프리킥 골을 꽂아넣은 장면에서 축구 팬들이 호날두를 연상했나 봅니다. ‘인민’이 붙은 건 안 선수의 국적이 북한이기 때문이고요.
 
안 선수는 량규사-안영학-정대세에 이어 네 번째로 국내 프로리그에서 뛰는 북한 선수가 됐네요. 북한 축구대표가 K2 팀에서 뛰는 건 처음이고요. 안병준 선수가 K2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참신한 스토리를 써 가고 있다는 점에서 흐뭇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 약간의 우려와 불안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경계인’으로 살아야 하는 숙명 말이지요. 2014년 8월 29일자 중앙일보에 ‘서글픈 경계인, 정대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 한국 국적인 ‘인민 루니’ 정대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로 뛰었습니다. 그는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북한 국가가 연주되자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 사진을 흑백 처리한 뒤 왼쪽은 빨강, 오른쪽은 파랑 바탕을 넣어서 지면에 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까지 3개국에 인연이 닿아 있지만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못한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의 일본식 표현)의 처지를 형상화 한 거죠.
 
정대세는 K리그에서 뛰면서도 많은 좌절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무 의도 없이 한 말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K리그 올스타전 팬 투표 1위에 오르자 “빨갱이가 대한민국 올스타전에 뛸 수는 없다”는 원색적인 반발에 부닥친 적도 있습니다.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에이전트가 큰 돈을 빼돌린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몸을 떨었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는 ‘역차별’도 경험했습니다.
 
안병준 선수도 이런 일들을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니, 이미 각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안 선수의 진가가 드러나고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벌써 입에 담지 못할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안 선수는 의연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당했다. 누군가를 차별하는 사람은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하셨죠. 최근 축구계의 화두로 떠오른 차별 반대 운동과 관련해 “국적이나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차별은, 인간이라면 할 짓이 아니다”고 강하게 말한 것도 봤습니다.
 
피부색·부모·국적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지어진 것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시비를 붙고 싸움을 거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나를 그저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는 안 선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스포츠 멘탈코칭 과정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납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는 맹견 두 마리를 제압해야 한다. 그것은 ‘편견’과 ‘선입견’이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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