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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피처럼 붉은 크레타 포도주, 그건 달콤한 자유 영혼

중앙선데이 2020.06.20 00:20 691호 26면 지면보기

와글와글 〈2〉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인의 상징처럼 언급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와인 이야기가 소설의 배경을 이룬다. 실존 인물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했다가 실패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지구촌 누빈 현대의 오디세우스
소설 속 포도·와인 묘사만 55곳

포도주가 사랑이 될 땐 거룩해져
작가의 묘비명엔 “나는 자유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비통한 심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재산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작품 속의 화자인 ‘나’는 글 쓰는 작가이며 욕망을 억제하고 이성을 강조하는 아폴로적인 삶을 지향한다. 반면 조르바는 술의 신 디오니스소스가 재림한 것처럼 금기를 넘나들며 자유를 만끽한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은 포도주였다.
  
750㎖ 와인병은 둘이 마시기에 딱
 
“우리는 술잔을 부딪고 토끼 피처럼 붉은 크레타 포도주를 마셨다. 그 포도주를 마시면 대지의 피와 말을 터 도깨비가 되는 기분이었다. 혈관에는 힘이 넘쳐흐르고 가슴은 선한 마음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그리스와 서양사회에서 포도주는 소통의 필수적인 수단이다. 혼자서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함께 마신다면 더 좋은 음료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접하는 스탠더드 와인병이 750㎖인 것이 좋은 예다. 주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혼자 마시기에는 부담스럽고 둘이서 나눠 마시기에 딱 좋은 양이다. 소통과 사회적 모임에 더 어울리도록 와인병이 고안되었다는 뜻이다.
 
삽화

삽화

작가 카잔차키스는 독일 땅에서 74년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프랑스·영국·이탈리아·러시아·중국·일본·팔레스타인·이집트 등 지구촌을 떠돌아다닌 현대의 오디세우스였다. 러시아 혁명시절 작가 이스트라티와 함께 막심 고리키를 방문하기로 하고 두 사람이 가져간 것도 와인이었다. 아르메니아산 고급 포도주 4병과 안주 등을 챙겨갔지만 기대와 달리 고르키와의 만남에 실망하여 두 사람은 가져간 술병을 다시 챙겨왔다고  
 
『영혼의 자서전』에서 적고 있다. 이처럼 와인은 카잔차키스의 인생,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다.
 
번역본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에 포도와 와인이 묘사된 대목은 55곳 정도 된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안의 간접광고(PPL)처럼 구석구석에 크레타의 포도주가 언급된다. 이처럼 작품 안에 와인이 자주 언급되는 작품도 드물다. 와인은 올리브와 함께 카잔차키스의 고향 크레타와 작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늙은 가지에 새 가지가 뻗으면 처음엔 아무것도 없지요. 그리고 거기 처음에 달리는 건 쓰디쓴 열매뿐이지요. 이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열매를 익히면 마침내 꿀처럼 달콤한 물건이 되지요. 이게 포도라고 하는 겁니다. 이 포도를 짓이겨, 우리가 술고래 성요한의 날에 열어 보면, 아! 포도주가 되어 있지 뭡니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조르바가 소설 속의 화자에게 와인을 인생에 비유해 설명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포도와 와인을 인생에 비유한다. 포도 열매가 자연 상태에서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 변화인 반면, 포도즙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화학적 변화다. 카잔차키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포도주가 사랑이 되는 과정을 ‘메토이소노’라 설명하고 있다. 임계점을 넘어서 정신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동명 영화선 안소니 퀸이 조르바 역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업에 실패한 뒤 바닷가 작은 나무통에 가득 채운 크레타 와인을 마시면서 조르바는 전통 악기 산투르를 연주하며 ‘아마네’라는 이름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장면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춤으로 연결된다. 안소니 퀸이 조르바 역을 연기한 동명의 영화에서 그리스 전통 악기의 운율에 맞춰 추는 시르타키 춤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쓰라린 고통이지만 실패는 인생을 한 경지 높은 차원으로 인도한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끼게 만든다. 소설의 배경이 부활절 시즌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연의 산물인 포도가 썩는 과정을 통해 와인으로 변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다. 크레타의 작가 무덤에 가면 와인과 글이 결합된 그의 와글와글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자유영혼을 희구하는 자들을 유혹하는 강렬한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펴낸 것은 1943년, 나치 독일이 조국을 점령하던 시절이며 그의 나이 만 60살 때였다. 헤밍웨이는 20대의 지독한 가난을 딛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탈고하여 무명의 설움을 떨쳐냈고,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고통을 이겨냈으며, 연암 박지원은 40대 중년위기의 터널을 『열하일기』를 통해 극복했다. 카잔차키스는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스스로 이겨냈다. 멋진 환갑선물이었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 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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