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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아니라는 이유로 침 뱉고 조롱…‘신사의 나라’는 없다

중앙선데이 2020.06.20 00:02 691호 24면 지면보기

[런던 아이] 인종차별 극우 폭동

올해로 8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짐 불리(Jim Bulley)가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 그리고 한국인은 잘 모르는 영국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사건과 이슈들에 숨은 사회문화적 배경과 현지의 살아 있는 뒷얘기를 생생하게 풉니다. 
 

침 테러 당한 흑인 여성 코로나 사망
유색인 의사 치료 거부하는 백인도

파괴·학살의 수백년 역사는 외면
대영제국 영광만 가르쳤기 때문

만연한 차별 묵묵히 견디는 이들
다양성 지키는 진정한 영국 신사

지난달 22일 런던인 파브 단데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뎃퍼드거리를 걷던 중 낯선 여성이 자신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파브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잠시 후 파브는 그 여성이 자신에게 침을 뱉으려고 하는 것을 느끼고 머리에서 헤드폰을 뺐다. 아니나 다를까, 침을 뱉는 여성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라”며 인종차별적인 폭언을 퍼부었다. 파브의 고향은 영국 버밍엄이다.
 
사실 인종차별 발언보다도 침을 뱉는 것이 더 위협적이었다. 최근 런던의 한 열차매표소 흑인 여성 직원 벨리 무징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뱉은 침에 감염돼 숨지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브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1시간 내로 누군가를 보내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경찰은 14시간이나 지나서야 파브에게 전화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압박과 불만을 표현한 2주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브렉시트, 인종차별적 주장의 승리
 
흑인인권운동에 반대하는 급진우파 시위대가 지난 13일 런던에서 집회를 위해 모이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흑인인권운동에 반대하는 급진우파 시위대가 지난 13일 런던에서 집회를 위해 모이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브의 이야기와 같은 사건은 영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뉴스에 나올 일은 없다. 사소한 불의, 언어 학대 혹은 폭력적인 행동을 실질적으로 간과하고 묻어 버리려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에 의해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진다.
 
유색인종 의사인 댄 챗필드는 요즘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한다. 댄은 의대 재학 중 출산 병동에 배치된 적이 있다. 하루는 출산 때문에 이른 새벽까지 병원에 있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적색 신호등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두 백인 경찰관이 댄을 세웠다. 댄은 사과하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경찰차 뒷좌석에 태웠다.
 
영국에서 적색 신호등을 무시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은 50파운드(약 7만6000원)의 벌금형에 해당된다. 감옥에까지 가야 하는 범죄는 아니다. 댄이 경찰차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한 백인 남성이 그 앞에 자전거를 타고 적색 신호등을 지나 달렸다. 경찰도 그걸 똑똑히 보고 심지어 지적도 했지만, 그 백인 남성은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보내 줬다.  
 
이러한 사건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생김새가 조금 다른 사람들을 비인간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나라 때문에 생긴 것이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영국 인구의 13%, 런던 인구의 40.2%가 유색인종이다.
 
런던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댄 챗필드

런던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댄 챗필드

영국의 다양성은 많은 영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며 영국인인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김새가 조금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계층으로 분류되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은 너무 흔히 볼 수 있다.
 
신씨 성을 가진 한국계 영국인 교포 친구는 도시의 바와 클럽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했는데, 주말마다 거리를 지나는 취객들의 인종차별 대상이 됐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것 봐, 재키 찬(홍콩 배우 청룽·成龍)이 여기 있네” 혹은 “봐 봐 쟤 가라데 할 줄 알 걸” 이라며 인종차별적 농담을 매일 밤 주고받았다.
 
화가 났지만 친구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바의 보안 요원이라 해도 사람들의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보다 그냥 무시하는 편이 더 쉬웠다. 농담하는 사람은 그냥 무식한 거지 진짜 인종차별을 하려고 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농담은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무지함에서 오는 것이라며 자신을 달랬다. 그러나 현실은 인종차별적 농담들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계속되고 그 영향은 당사자에게 평생 쌓여 간다는 것이다.
 
유색인종인 모(Mo)는 런던 중심부에 있는 병원의 의사다. 그는 코로나19 병동에서 보호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한다. 모는 의생명과학 학위를 받았으며, 5년 동안 의과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7년 동안 의사로 일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시기에도 일부 환자들은 그의 피부색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의료 비극을 겪는 동안에도, 런던 중심부에 있는 몇몇 환자들은 갈색 피부를 가진 의사의 치료를 받기 거부한다.
 
사람들은 최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처럼 전 세계가 시위로 들썩거리는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계속되는 작은 불의는 잘 알지 못한다.
 
영국 외교부 직원인 파브 단데

영국 외교부 직원인 파브 단데

나는 영국이 다양한 문화가 결합돼 만드는 다양성을 가진 국가라고 항상 믿어 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다양성에 자부심을 가졌고, 처음 한국으로 왔을 때 비교적 인종의 다양성이 거의 없는 나라에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을 봤을 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내가 자라온 영국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영국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영국에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고, 놀랍게도 인종차별적인 주장이 이기는 것을 전 세계가 보지 않았는가.
 
예전부터 영국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를 제압하고 영국을 따르도록 강요하며 부와 세계를 세운 나라다. 대영 제국은 다른 모든 문화와 사람들이 백인, 영국인보다 열등하다는 가정하에 세워졌다. 수백 년 동안 영국의 대외 정책에는 인종차별이 깔려 있었지만, 그 행동의 결과에 많은 부분이 아직도 인지되지 않고 있다.
  
테러로 순직한 경찰관 기념비 훼손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나는 대영제국으로서 영국이 다른 나라들에 끼쳤던 피해와 그 결과에 대해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수백만의 인도인, 아메리카 원주민, 카리브해, 남아프리카 등 영국이 제도적으로 파괴한 사람이나 문화에 대해서도 배운 적이 없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거부는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윈스턴 처칠이 엄청난 인종차별을 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그의 전쟁 지도자로서 위대한 업적만을 기린다. 처칠은 인도인을 “독일만큼 끔찍한 야만인”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수단의 ‘야만인’을 살해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조차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러한 영국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지와 이해의 부족은 다른 나라에서의 인종차별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보이는 미국 인종차별은 대놓고 드러내며 공개적이다. 미국과 영국 모두 제도적 인종 차별이 존재하지만,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매우 뚜렷한 공공 극우 집회 및 인종 차별주의 단체는 영국에 최근에서야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수백 명의 백인이 런던 중심부에 모여 ‘우리 기념물을 보호하자’는 시위를 했다. 이 시위는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계획됐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에 대한 반대시위였다. 사실 흑인 인권 보호를 반대하는 반BLM시위 자체가 인종차별이다.
 
실제로 BLM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런던 중심을 가로질러 폭동을 일으키며 경찰을 공격하고 히틀러식 경례를 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남자는 2017년 테러공격으로 사망한 경찰관의 기념비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영국 신사’라는 말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콜린 퍼스와 같은 키가 크고 옷을 잘 차려입은 백인 남자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런던의 인종차별 폭동으로 영국 신사와 같은 모습을 한 영국 사람을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는 게 아닐까.
 
진정한 영국 신사를 찾고 싶다면 앞에 나온 파브나 댄, 모와 신씨 같은 사람들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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