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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의 후 절 들어간 주호영 "구름이 깊어 있는 곳 모른다"

중앙일보 2020.06.19 17:09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지난 15일 사의를 표명한 후 사찰을 돌며 칩거 중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19일 머무는 곳을 묻는 중앙일보의 취재진에 다섯자 시구로 답을 대신했다.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끝 구절이다. 아직 할 얘기가 없으니 찾지 말라는 뜻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의사진행 발언을 위해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다. <br><br>법사위원장을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당시 본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뉴스1]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의사진행 발언을 위해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다. <br><br>법사위원장을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당시 본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뉴스1]

  
주 원내대표는 이후 통화에서 “계속 장소를 옮겨 다니고 있다”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것이다. 머리를 비우고 있다”고 말했다. 복귀 계획이나 원 구성 협상 등에 대한 질문에는 “그런 것들은 전부 다 가진 민주당에서 여지를 주고 양보를 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라며 “그렇지 않나,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6개 상임위원회 구성을 밀어붙이자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후 대전 현충원과 충남 아산 현충사를 방문했고, 충남·호남·경남 등 각지의 사찰을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주 원내대표는 ‘유발승’(머리를 깎지 않은 승려)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불교 신자다. 당내에선 “원내대표의 책임이 아니니 돌아와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절에서 닷새를 보냈다.
 
이와 관련 통합당 의원은 “협상 상대가 저렇게 떠났는데 또다시 상임위 배정을 강행하는 건 아무리 민주당이라도 부담이고,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당내 일부 강경파의 목소리도 잦아들 수밖에 없다”며 “돌아와도 당장 쓸 카드가 없는 야당 원내대표 입장에선 지금 상태가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당 초선 의원 간담회에서 “내가 보기에 주 원내대표가 주말쯤 지나면 올라오게 될 것으로 본다”며 “올라오면 우리가 어떻게 (국회 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의 칩거로 협상 상대 자체가 사라진 민주당은 “빨리 만나서 얘기하자”는 입장이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주 원내대표 위치를) 알게 되면 찾아가서 상의하고 싶다”며 “원내대표끼리 만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 관련 문제에도 국회가 답해야 한다. 더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그것에 대해선 내가 이야기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현재 통합당은 상임위 회의 등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대신 외교ㆍ안보 등 현안과 관련해선 4개의 당내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의 복귀 때까지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 다수가 의원총회 등을 통해 주 원내대표를 재신임하고 그 이후 전략을 새로 세우자는 입장이다. 배준영 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여당이 수적 우위로 밀어붙여서 저희가 제안할 수단이 없고, 원내 사령탑이 되돌아오면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결자해지 하지 않으면 원 구성 문제에 대해 답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남북관계 악화가 변수다. 박수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장은 상임위 강제배정을 비롯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하반기 법사위는 야당에 주는 대신, 통합당은 18개 상임위 전체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며 “반대의견도 많을 것이고 강경파로부터 욕도 먹겠지만, 국가안보 위기 앞에서는 불가피한 행동”이라고 적었다. 앞서 장제원ㆍ하태경 의원도 외교ㆍ안보 관련 상임위에 참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 중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임현동 기자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 중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임현동 기자

 
한 초선 의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들어갈 수는 없지만, 4년 내내 본회의장 밖에서 지낼 수도 없다”며 “당당히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명분과 계기가 중요하다. 남북관계도 위중하기 때문에 여러 계기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국희ㆍ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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