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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고 사는 사이

중앙일보 2020.06.19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77)

최근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즐겨봅니다. 드라마에 대해 제작진은 가족과 같은 타인, 타인 같은 가족의 오해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해 보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인 드라마는 제목에서부터 같이 사는 것뿐, 우리는 그저 이름뿐인 가족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드라마에는 부부와 세 남매가 가족으로 등장합니다. 남편 상식은 25년 트럭운전을 하며 세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자수성가하지만, 서서히 아내와 자식과 멀어집니다. 밤낮없이 운전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하필 그가 가장 바쁜 날들은 명절, 연말연시, 휴가철입니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기를 일로 채우며 스스로는 외롭고 가족들과는 본의 아니게 멀어져 갔으며 그러다 보니 점점 말이 없어졌죠. 그렇게 오십이 넘은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등산입니다.
 
가족과 같은 타인, 타인 같은 가족의 오해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해 보일 수 있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가족과 같은 타인, 타인 같은 가족의 오해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해 보일 수 있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결혼 후 평생 살림만 하며 살아온 아내 진숙은 일상이 지루합니다. 그저 빨리 나이 들고 싶단 생각만 가득합니다. 그러다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처음으로 미래가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힘이 아닌 짐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차곡차곡 답답함을 쌓아둔 아내는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폭탄이혼선언을 합니다. 당황한 남편은 밤등산을 떠나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만나 기억을 잃게 되죠. 기억이 멈춘 시간은 결혼하기 직전 달콤하기만 하던 22살의 시간입니다. 긴 시간을 함께 살면서 현실 앞에서 서로의 맘은 점점 변해갔고, 여러 사연이 쌓이며 남편의 모든 모습이 숨 막히게 싫었던 아내는 남편에게 헤어지자 선언했죠. 하지만 22살로 돌아간 남편은 너무나 달라져 있습니다.
 
잠깐 졸았다 일어난 것 같은데 거울 속 낯선 얼굴에 남편은 스스로가 낯설고, 그때로 기억이 돌아간 늙은 얼굴의 남편은 결혼 전 프러포즈를 할 때처럼 아내를 보며 설렙니다. 다정함과 표현하기를 잃고 자기 앞가림에만 바빴던 남편이 변했습니다. 아니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에 묻혀 서로가 잊고 있던 모습입니다. 22살로 돌아간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꽃다발을 사 아내에게 건네고, 일하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순간순간 공유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는 것조차 싫었던 아내였는데, 결혼 전으로 돌아간 남편이 낯설지만 싫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 회를 거듭할수록 기억을 찾아가는 남편과 가족의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고 멈춘 시간은 결혼 직전 달콤하기만 하던 22살의 시간입니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고 멈춘 시간은 결혼 직전 달콤하기만 하던 22살의 시간입니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그렇게 ‘부부란 무엇일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한 편을 즐겨보다 역시 부부 사이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영화 한 편을 만났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마스크를 낀 체 다소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보고 싶던 영화는 〈카페 벨에포크〉였습니다. 벨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말로 ‘좋은 시대’를 뜻하는데, 지난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말합니다. 영화는 질문합니다. “당신에겐 있었나요? 돌아가고 싶은 딱 하루”
 
영화에는 예전의 좋았던 시절만 떠올리며 변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 빅토르가 등장합니다. 반면 인공지능 알고리즘 분석으로 심리상담을 하는 아내는 그런 남편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모든 면에서 영감처럼 구는 남편이 못마땅하죠.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고 쫓겨납니다.
 
영화에는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공간인 ‘카페 벨에포크’가 주 무대로 등장합니다. 100%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추억여행을 보내주는 공간입니다. 헤밍웨이를 만나 술 한잔하며 문학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히틀러를 만나 신나게 한 대 때려줄 수도 있습니다. 딱히 갈 곳이 없어진 남편은 아들에게 선물 받은 ‘카페 벨에포크’의 초대장을 들고 그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가고 싶었던 순간은 1974년 5월, 스무살의 빅토르가 첫사랑 그녀를 만났던 곳입니다. 물론 첫사랑 그녀는 재연 배우가 대신해 줍니다. 이게 다 거짓임을 알면서도, 세트와 그저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모습에 바보 같다고 느끼면서도 빅토르는 다시 돌아간 그 공간에서 자신을 꾸미고 사라졌던 열정을 다시 불태웁니다.
 
세트와 그저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모습에 바보같다고 느끼면서도 빅토르는 다시 돌아간 그 공간에서 자신을 꾸미고 사라졌던 열정을 다시 불태웁니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세트와 그저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모습에 바보같다고 느끼면서도 빅토르는 다시 돌아간 그 공간에서 자신을 꾸미고 사라졌던 열정을 다시 불태웁니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돌아간 그 공간에 자신을 쫓아낸 아내가 찾아옵니다. 1974년 스무살 첫사랑에 빠졌던 바로 그녀입니다. 그때처럼 차려입은 남편을 보며 아내는 말하죠. 이렇게 예전처럼 넥타이도 하고 다니면 좋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넥타이 하나로 뭐가 그리 달라지겠냐는 남편의 말에 답하죠. 40년쯤 살다 보면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고 말입니다.
 
영화 속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지극히 현실적인 노부부의 권태로 시작된 영화는 누구에게나 찬란한 순간은 있었으며 그 찬란함의 순간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여전히 함께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이미 알지만 쉽게 잊고 사는 것.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는 나의 시선이 변한 것이죠.
 
드라마 속 22살로 돌아간 상식이 찾은 것,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세트장에서 20살 첫사랑을 만난 빅토르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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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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