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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로 바꾸랄 땐 언제고" 재벌개혁 타깃된 기업들 분통

중앙일보 2020.06.19 05:00 경제 1면 지면보기
“거미줄처럼 얽힌 지배구조를 좍좍 펴서 지주사 형태로 바꾸라면서요. 그런데 이제 와서 없던 규제까지 만들어 붙이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A지주사 관계자)
 

지분 0.01%만 있으면 자회사 소송
“헤지펀드, 대기업 공격 수월해져”

감사위원 분리선임 ‘3%룰’ 강화
통과땐 현대차, 엘리엇 방어 힘들어

“세계적으로 이런 입법사례 없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괴롭다”

정부가 권장해 지난 20년 동안 크게 늘어난 지주회사(지주사)들이 사실상 정부 ‘재벌개혁’의 표적이 됐다. 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정부 주요 기관과 여당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규제 법안을 발표하자 기업들은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 권장으로 20년 만에 ‘0 →173개’ 

1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한국의 지주사는 일반·금융지주를 합쳐 모두 173개다. 정부가 1999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 뒤 김대중·노무현 정부 내내 지주사 전환을 장려했다. 외환위기 당시엔 지분을 떼어 팔거나 사서 붙이기 쉽도록 구조를 단순화해 구조조정을 쉽게 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후에도 순환출자를 지양하고 대주주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기를 권했다. 그 결과 지주사 수는 크게 늘어났고, 대기업 집단 59개 중 23곳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 증가 추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주회사 증가 추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지만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사를 규제하는 조항들을 대거 담고 있다. 
법무부가 상법에 도입한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지분이 0.01% 이상 있는 주주라면, 자회사 등기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법무부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책임을 추궁할 수단을 만든 것일 뿐, 경영 개입수단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8일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기업의 체감은 다르다. 예를 들어 LG그룹 지주사인 ㈜LG의 18일 시가총액은 13조1000억원인데, 외국인 지분이 34%가 넘는다. 투기자본이 0.01%인 13억1000만원만 지주사에 투자하면 계열사인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지주사로 전환한 B기업 관계자는 “헤지펀드나 특정 세력이 지주사 지분 0.01%를 모아 자회사에 소송을 하고 주가를 떨어뜨린 뒤 헐값에 주식을 사 단기차익을 얻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연중 소송이 진행될 수 있다”고 심란해 했다.
 

기업 반대해 온 ‘3%룰’ 오히려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임’도 큰 부담이다. 감사위원은 회계정보를 포함해 회사의 핵심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중책이다. 지금까지 대주주 측이 제안한 이사 중에서 뽑았다. 하지만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다른 이사와 별도로 뽑게 하면서, 특히 외부에서 오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에 대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지주사 또는 총수일가)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모두 합해 3% 이하로 제한했다. 
 
반면 일반 주주들은 ‘합산 3%룰’에 묶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주주들이 연합하면 각각 3%씩 사실상 무한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SK주식 14.99%를 가진 소버린이 펀드를 5개로 나누는 ‘지분 쪼개기’로 2.99%씩 의결권을 모두 행사해 SK 경영권에 도전한 게 대표적이다. 
지주회사 규제강화 법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주회사 규제강화 법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재계 관계자는 “감사위원을 대주주 의견과 상관없이 뽑고, 그에 대한 의결권도 기존 3% 룰에서 합산 3%로 강화해 이중 규제가 돼 버렸다”며 “대주주에게 더 많은 권한이 있는 건 당연한데 왜 대주주를 범죄자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이 경우 헤지펀드 대표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자본들이 감사위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라 파급력이 클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입법 사례는 없다”고 했다. 이어 “종종 한국 기업의 이사회가 ‘거수기’라고 비판받는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도 사전에 토론을 거친 것”이라며 “헤지펀드나 행동주의 펀드들이 대주주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걸 무조건 ‘정의롭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와중에 지분 늘리라면 어떻게 하나" 

지주사 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서 규제끼리 상충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비교적 최근 지주사로 전환한 C기업 관계자는 “언제는 대주주들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분을 계속 늘리라더니, 지분을 늘릴수록 ‘3% 룰’로 상실되는 의결권이 많아지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지주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손자회사 지분율을 상장사는 현행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늘리도록 했다. 책임 경영 차원에서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는 상장·비상장 할 것 없이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기업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하고, 그 기업들이 지분을 50% 넘게 가진 회사들도 규제 대상에 넣었다. 지주사는 대부분 총수일가 지분이 높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데, 개정안에 따라 비상장사인 자·손자회사 지분율을 40%에서 50%로 높이면 그동안 규제받지 않았던 수많은 비상장사들까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국내 5대 그룹에 속하는 지주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재편과 인수합병이 생존을 좌우하게 됐는데 큰 기업 하나를 인수해 자회사로 두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게 된다”며 “유보자금을 지분율 맞추는 데 쓴다면 투자나 미래먹거리 발굴 활동이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주사로 바꾸라더니 규제는 계속 늘고, 다시 이전 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괴롭다”고 토로했다. 
 

176석 쥔 민주당 ‘돈 번 기업은 이익 나누라’ 입법 

정부의 규제 입법 의지는 견고해지는 모양새다. 앞서 16일에도 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이 골자인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반시장적인 법안’이라며 무산됐지만,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4월 “코로나19 사태로 이익을 보는 기업이 이익을 공유해야 고통 분담이 이뤄진다”며 협력이익공유제 입법을 약속했고, 발의된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부는 대주주와 지주사를 규제하면서 소액주주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사실 개미 소액주주들과 규제와는 큰 상관이 없다”며 “결국 “3~5% 내외의 주식을 가진 대형 펀드들만 보호해 기업 경영과 소액주주 양쪽 모두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로 고용유지 등 기업의 역할이 더욱 커졌는데 정부가 대기업의 거래 비용을 키우고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때가 아니다”라며 “지주사 제도가 일관성과 중립성을 잃고 ‘지주사=재벌=나쁜 것’이라는 논리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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