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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일하는 난민도 한국 미래 일부”

중앙일보 2020.06.19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18일 서울 이태원 이주민가정지원센터에서 김기학 대표와 기자 출신 예멘 난민 이스마일씨가 후원받은 마스크를 보고 있다. 편광현 기자

18일 서울 이태원 이주민가정지원센터에서 김기학 대표와 기자 출신 예멘 난민 이스마일씨가 후원받은 마스크를 보고 있다. 편광현 기자

2018년 5월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이스마일(32)씨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에어아시아 항공편을 타고 제주도에 왔다. 그즈음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은 500명이 넘었다. 이들은 입국신고서의 입국 목적 칸 ‘관광’에 체크했지만, 사실은 내전을 피해 한국을 두 번째 고향으로 선택한 이들이었다.

‘세계 난민의 날’ 맞는 제주 예멘인들
난민 신청 550명 중 4명만 인정
대부분 국내 조선소·양식장 근무
콩고 난민은 “한국 벗어나면 죽음뿐”

 
갑작스러운 이방인들의 입국에 우리 국민은 적잖게 당황했다.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이들의 한국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18일 서울 이태원 이주민가정지원센터에서 만난 이스마일씨는 "처음 우리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지난 2년간 한국에서 살아보니 한국인들과 제대로 대화했을 때는 오해 없이 친절하고 좋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친구 대부분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다.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예멘인 550명 중 난민 인정자는 4명에 불과하다. 이스마일씨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며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 미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미래도 한국에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5월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인정 신청을 한 모함마드 알마마리(37)씨가 본인이 운영하는 제주도 식당 주방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모함마드 알마마리]

2018년 5월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인정 신청을 한 모함마드 알마마리(37)씨가 본인이 운영하는 제주도 식당 주방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모함마드 알마마리]

모함마드 알마마리(37)씨도 2018년 5월 제주도에 왔다. 지난해 한국인 하민경씨와 결혼해 제주도 골목 어귀에 할랄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내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치적 박해 등의 인정 사유를 직접 소명하지 못하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알마마리씨는 역시 “한국에서 아내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 인종차별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고 한다. 알마마리씨는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안내서 등이 없다”고 전했다.
 
정부의 지원도 당부했다. 알마마리씨는 “함께 온 친구들은 한국인 친구나 지원 봉사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사는 상황"이라며 “불행히도 정부의 도움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제주 예멘인 난민 신청자 중 대부분인 490명은 알마마리씨처럼 인도적 체류자 자격으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국내에서 조선소(119명), 제조업체(155명), 양식장(10명) 등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예멘 난민 이외에 다른 국적의 난민 신청자들도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 인정 신청자 중 심사를 완료한 2만9463명 중 난민 인정자는 1052명(3.6%)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4.8%)보다 매우 낮은 편이다.
 
17년째 난민 불인정자로 살아가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나디아(가명·42)씨는 “아이들은 한국말밖에 못 한다”며 “이 땅을 벗어나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고 읍소했다.
 
콩고에서 비교적 순탄했던 삶을 살았던 나디아씨는 남편이 반정부 세력으로 몰리면서 한국 행을 택했다. 부부는 2004년 법무부에 정식으로 난민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불인정이었다.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서다.
 
나디아 씨는 “한국은 이미 내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평범한 한국인으로 정상적으로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난민 신청이 1만5000건을 넘겼는데, 현재 난민 심사 인력은 국내에 93명뿐"이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난민을 효율적으로 걸러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광우·박사라·편광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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