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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제너럴리스트의 의무

중앙일보 2020.06.19 00:48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불과’ 30년 전, 전화번호를 500개 외운다고 자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그다지 현실적으로 믿을만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겠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제법 있었으며, 상당한 존경과 질시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좁고 어두운 공중전화 박스에서 굳이 수첩을 열어 번호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바로 걸 수 있다는 건 매우 쓸모있는 재능이었고 상당히 부러운 능력이었다.
 

코로나·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미래사회 앞둔 학술과 교육
제너럴리스트의 통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노력과 고민 필요

위의 이야기가 사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누군가가 500개의 전화번호를 외울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불과’ 30년만에 이것이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전 세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자 능력이었던 것이 불과 한 세대가 지나가는 시간에 아예 기술과 능력의 범주에서 삭제된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전화번호를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그 노력을 삶의 훨씬 더 중요한 일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시나 우리의 학술과 교육이 전화번호를 500개 외우게 하던 이전 시대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는게 아닌지 항상 뒤돌아보게 된다. 칠판과 분필이 파워포인트와 비대면 수업 등으로 그 형식이 진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달되는 내용은 여전히 지난 세대의 지식이 아닌지 우려한다. 내가 수십년 동안 연구하고 전문화한 분야가 어느날 갑자기 무의미해질 것 또한 우려한다.
 
근대적 지식의 생산과 재생산(교육)은 사실 철저하고 끊임없는 ‘구분짓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연구가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 분화한 것처럼,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도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으로 분화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분화가 ‘분절화’라고 할만큼 더 세부 전공으로 나뉘어지고, 더 전문화가 진행되었으며, 높은 학문간 장벽을 세운 채 상이한 분석방법과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학술과 교육은 가장 젊은 나이에 시작해서 하나의 바늘끝 같이 좁은 영역에 천착한 채 “1만 시간”동안 파들어갈 가장 재능있는 사람을 찾는 것을 가장 주요한 성공 모델로 두게 되었다. 그 어느 정치학 박사도 자신이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대외통상 정책”을 전공했다고 말해야 비로소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전문화와 집중화의 성과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아니거니와 연구자로서 나 자신 또한 이런 시스템에서 길러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댓가로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우리는, 큰 질문을 던지고 거시적으로 유효한 대답을 구하는 통찰을 잃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바늘같이 특화된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할 이야기가 더 이상 없어졌으며, 더 중요하게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이해하고 이들과 대화할 공간도 극단적으로 좁아지게 되었다.
 
예컨대 우리 공동체에 드리운 코로나바이러스의 암운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생명과학과 역학에서부터 경제정책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분과의 시각이 불가결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학술과 지식이 이에 대한 실천적 해답들을 효과적으로 찾아내 공동체를 잘 인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며, 그 핵심에는 개별 분과 학문들 사이의 건너지 못할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학술과 연구에서는 ‘통섭’이나 ‘융합’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과 학문들의 소통과 협업을 강조해 왔으며, 교육에서는 학부 교양교육을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분과 학문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자원은 희소한 곳에서 통섭, 융합, 교양이란 말들은 사치로 생각되었다. 끊임없이 스페셜리스트들이 이상화되고 호명되어왔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슬로건이 있었으며, 이들을 대학이 가장 짧은 시간에 스페셜리스트로 키우는 것, 그리고 이들을 가장 빠른 시간에 기업과 사회가 가져다 쓰는 것이 이상적 모델로 생각되어 왔다. 예컨대, 전화번호 500개를 외울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때와 장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회의 변화 앞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던지는 난해한 문제들과 감염병의 일상화라는 심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의 학술과 교육을 그 근본에서부터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제너럴리스트들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깊이를 가지되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읽고 시대를 통찰하며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줄 학술과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가. 부분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전체를 조망할 능력이 있는,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낼 창의적이고 행복한 인재를 기르는 교육, 진정으로 존재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 공동체가 눈앞에 두고 있는 근본적 위기가 새삼 알려준 사실은 우리를 미래로 안내해 줄 유일한 희망은 결국 지식과 교육이라는 매우 당연한 사실이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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