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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5·18 비방 처벌 위한 법개정 꼭 필요한가

중앙일보 2020.06.19 00:42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했다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겠다는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방 세력 생각처럼 많지 않아
처벌조항의 과잉성 지적 나와
‘사상 시장’서 자체 정화 가능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형석 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입법 공청회’에서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5·18을 왜곡·폄훼하는 세력의 준동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법안 개정의 취지입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지만, 자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무책임하게 지속되고 있는 역사왜곡과 혐오를 바로잡기 위해 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여당 지휘부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당초 또 다른 특별법을 통해 5·18 비방사범을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특별법이 남발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비판적 여론 때문에 접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별법 개정이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대 국회에서도 5·18 민주화 운동을 비방·왜곡·날조하거나 관련자나 단체를 모욕 또는 악의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박지원 의원을 비롯해 수 많은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회기내에 법개정을 하지 못하고 다시 입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엔 법사위원장도 차지하고, 개정안 통과에 필요한 의원 정족수도 충분해 법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습니다.
 
먼저 5·18 비방 사범의 실태입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왜곡의 양상은 ①40여개의 인터넷 매체 및 유튜브 등을 통한 허위사실 생산 및 유통 ②집회와 이후 유튜브 방영을 통한 왜곡 ③전두환 회고록 등 출판물을 통한 사실 날조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관련 단체는 모두 12건에 대해 명예훼손 및 모욕 등의 혐의로 법률 대응을 해 5건은 유죄 및 배상 판결을 받았고, 3건은 사건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지만원씨 사건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5·18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고, 이 과정에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5·18을 왜곡·날조는 물론 비판할 생각도 없습니다. 전 전 대통령과 지만원씨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요. 일베 등 극우성향의 사람들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쏟아내는 말에 현혹되는 국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처벌의 대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처벌 조항의 과잉성을 지적하는 법률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형법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정보통신 및 이용 촉진법 등으로도 5·18 비방 세력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습니다.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비방 목적으로 정보통신망 이용(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혐의가 가능합니다. 법정 최대형이 7년 징역과 7000만원 벌금이 다소 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정부 핵심 세력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반(反)국가단체나 그 구성원들의 활동을 찬양·고무·선동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철폐요구의 핵심이었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얘기하면서 사상의 공개적 시장에 개개인들의 의견을 맡겨보자는 것 아니었습니까.
 
또 있습니다. 5·18 관련 단체가 계속해 늘어나면서 일부의 일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의기억연대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통제받지 않는 세력은 언제든지 부패해질 수 있습니다. 비판은 정상적인 상황보다는 돌발적인 변수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청회에서 지적된 것처럼 과거 보수정부 때 극우세력 단체들의 안하무인격인 횡포와 전횡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금남로에 흩뿌려졌던 5·18 희생자들의 피가 헛되이 덮히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헌법상 기본권 침해 논란까지 이어질 수 있는 특별법 개정안이 오히려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고, 이로 인해 정의로운 기억의 본질을 흐릴 것 같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은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숭고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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